나치 테러의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것은 SS라고도 불리웠던 친위대(Schutzstaffel)였는데, 친위대는 아돌프 히틀러와 당 지도자들을 위한 특수 경비대로 시작하였다. SS 회원들은 검은 셔츠를 입은 작은 엘리트 그룹의 단원들로서 보조 경찰로도 근무하고 후에는 집단 수용소 경비원으로도 일하였다. 점차적으로 나치 돌격대(SA)보다 그 중요성이 더해지면서 SS는 1934년 이후로 나치당의 개인 군대가 되었다.

SS 사령관 하인리히 히믈러(Heinrich Himmler)도 일반(무소속) 경찰력을 테러의 도구로 사용 하였다. 그는 강력한 독일 비밀 경찰(Geheime Staatspolizei)인 게슈타포를 만드는데 기여했는데, 이 사복 경찰들은 독일 전역에서 무자비하고 잔인한 방법을 사용해서 정치적 반대 세력과 나치 통치의 법과 정책을 거부하는 사람들을 찾아서 체포했다.

히틀러가 정권을 잡은 몇개월 후 SA와 게슈타포 요원들은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히틀러의 적을 찾아냈다. 사회주의자, 공산주의자, 노동 조합 지도부, 그리고 나치당에 대해 반대 발언을 한 사람들이 체포되었으며 일부는 살해되었다. 1933년 중반에는 나치당만이 유일한 정당으로 남게 되었으며, 제국에 대한 거의 모든 반대 조직들이 제거되었다. 독일에서 민주주의는 소멸 되었다.

SA와 SS를 비롯한 많은 다양한 그룹들이 독일 전역의 빈 창고, 공장 및 기타 지역에 임시 "수용소"를 만들고는 정치적 반대 세력을 재판 없이 감금하고 잔인하게 탄압했다. 이러한 수용소 중 하나가 1933년 3월 20일, 제1차 세계대전의 버려진 군수 공장이 있는 다하우에 세워졌는데 독일 남서부의 뮌헨 근처에 위치한 이 다하우수용소는 방대한 SS 수용소 시스템의 "모델" 집단 수용소가 되었다.

주요 날짜

1933년 2월 22일
SS와 SA가 보조 경찰 부대가 되다

아돌프 히틀러가 독일의 수상으로 임명된 후 1개월도 되지 않아 히틀러는 나치당의 개별 조직이 보조 경찰로 활동할 것을 주문한다. 원래는 히틀러의 경호 부대였던 SS와 나치 돌격대인 SA가 공식적인 경찰이 된다. 이것을 통해 독일 사회에서 나치당의 세력이 커진다.

1933년 2월 28일
경찰력을 강화하게 만든 국회의사당 화재 법령

1933년 2월 27일에 국회 의사당(독일 의회) 화재 사건 후에 시행된 긴급 법령은 경찰에게 거의 무제한적인 체포 권한을 부여한다. 이러한 권력을 "보호 감호"라고 한다. 국가 사회주의 용어에서 보호 감호는 제국에 대한 잠재적인 반대 세력을 재판이나 법적 절차 없이 체포하는 것을 의미한다. 보호 감호 수감자들은 일반 교도소가 아니라 집단 수용소에 감금된다. 이러한 수용소는 초기에 나치 돌격대(SA)에 의해 세워졌으며 나중에는 SS(나치 친위대) 사령관의 단독적인 권한으로 세워졌다.

1933년 3월 20일
하인리히 히믈러가 다하우 수용소의 개소를 발표하다

독일 남부의 뮌헨 근처에 있는 다하우 수용소는 나치에 의해 제일 먼저 세워진 집단 수용소 중 하나이다. SS 사령관 하인리히 히믈러(Heinrich Himmler)는 1933년 3월 20일에 이 수용소의 개소를 발표한다. 3월 22일, 첫 번째 수감자가 도착하는데, 이들은 주로 공산주의자이거나 사회주의자들이다. 다하우는 1933년부터 1945년까지 가동된 유일한 캠프이다.

1936년 6월 17일
독일 경찰의 사령관이 되는 하인리히 히믈러

아돌프 히틀러는 SS 사령관 하인리히 히믈러(Heinrich Himmler)를 모든 독일 경찰 부대의 사령관으로 임명한다. 이제 모든 경찰력이 집중화 되었고 게슈타포(독일 비밀 경찰)는 히믈러의 손아귀에 들어오게 된다. 국가의 안보를 담당하는 게슈타포는 사람들을 집단 수용소로 보낼 권한을 가진다. 게슈타포 회원이 SS의 회원인 경우가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