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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언

발터 메이어(Walter Meyer)

발터는 독일 중북부의 카젤에서 태어났지만 라인 지방에서 성장했다. 발터는 청소년 시절에 배웠던 독일 우월주의와 반유태주의에 대해 의문을 가졌다. 반나치주의였던 그의 아버지는 발터가 아돌프 히틀러 학교에 들어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지만 히틀러 청년단에 들어가는 것은 허락했다. 그러나, 발터는 반항적인 성향으로 인해 유태인 친구를 자신의 지하실에 숨겨주게 된다. 또한, 청년 나치 단원들을 괴롭히는 갱을 조직하고 프랑스 전쟁 포로를 도왔다. 이들은 자신들을 (독일의 다른 반정부 청년 그룹이 그랬던 것처럼) 에델바이스 해적단이라고 불렀다. 1943년 발터는 폭격을 받은 상점에서 신발을 훔치다가 체포되어 수감되었다. 그는 결국 라벤스부뤼크 수용소로 이송되어 채석장에서 강제 노동을 하게 되었다. 1945년, 발터는 결핵에 걸렸기 때문에 자신이 살해되기 전에 탈출하기로 결심했다. 그는 짙은 안개에 숨어서 한 농가에 도착했다. 농부는 그에게 아들의 군복을 입혀서 기차를 타고 고향인 뒤셀도르프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발터는 병원에 입원한 후 건강을 회복하고 나중에 미국으로 이주하였다.

녹취

  • US Holocaust Memorial Museum Colle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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