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다순으로 정렬된 지리적 지도들은 홀로코스트와 제2차 세계 대전의 수용소, 게토, 집단 학살터 같은 장소와 추방 같은 움직임들을 묘사합니다.
독일이 점령한 유럽 전역에서 독일은 독일의 통치에 저항하거나 인종적으로 열등하다고 생각되는 사람들 또는 정치적으로 수용 가능하지 않은 사람들을 체포하였다. 독일 통치에 저항하다가 체포된 사람들은 대부분 강제 노동 수용소나 집단 수용소로 보내졌다. 독일은 유럽 전역에서 유태인을 폴란드의 집단 학살 수용소로 이송하였다. 거기에서 그들은 조직적으로 살해되었다. 또한…
제2차 세계대전 후, 수천 명의 유태인 난민들이 난민 수용소에 남아 있었다. 연합군은 이러한 난민 수용소를 연합군이 점령한 독일, 오스트리아 그리고 이탈리아에 세워 유럽을 떠나고자 기대하는 유태인 난민들을 수용하였다. 대부분의 유태인 DP(난민)들은 유럽을 떠나 팔레스타인으로 가거나 미국으로 가기를 원했다. 그들은 유럽을 떠날 때까지 난민 수용소에 머물기로 결정하였다.…
나치의 테러에 맞서서 많은 유태인들은 독일과 그 협력자들에게 저항하는 운동을 전개하였다. 지하 레지스탕스 운동은 나치가 점령한 동부 유럽의 100여 개소 이상의 게토에서부터 발전하기 시작했다. 더 나아가, 가장 불리한 조건 하의 몇몇 나치 수용소에서도 유태인 수감자들은 그 저항의 맥을 이어갔다. 유태인들은 프랑스, 벨기에, 우크라이나, 벨로루시, 리투아니아 그리고…
1939년 가을, 독일은 폴란드 서부를 점령하였다. 이 지역의 대부분은 독일 제3제국에 합병되었다. 동부 폴란드는 1941년 6월까지 독일에 점령되지 않은 상태로 남아 있었다. 독일은 폴란드 중남부 지역에 중앙 정부(Generalgouvernement)를 세웠는데 대부분의 게토도 역시 이 지역에 세워졌다. 게토란 도시의 제한된 구역으로서 독일인들은 유태인들을 여기의 비참한 환경에서 살게 하였다.…
집단 학살 수용소란 인종말살을 실행에 옮기기 위하여 세워진 장소이다. 1941년부터 1945년 사이, 나치는 구 폴란드 지역인 헤움노, 베르젝, 소비보르, 트레블링카,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아우슈비츠 복합 수용소의 일부) 및 마이다네크 지역에 6개의 집단 학살 수용소를 세웠다. 헤움노와 아우슈비츠는 1939년에 독일에 복속된 지역에 세워졌고 다른 수용소들(베르젝, 소비보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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