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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출

    애니메이션 지도

    대다수의 유럽인들의 두려움이나 무관심에도 불구하고 용감한 소수의 사람들은 목숨을 걸고 나치 점령 유럽에서 유태인을 구출하는데 협력하였다. 구출은 여러가지 형태로 이루어졌다. 1943년 가을, 덴마크 레지스탕스 운동은 선박을 통하여 덴마크에 거주하는 대부분의 유태인을 중립국인 스웨덴으로 안전하게 탈출시켰다. 다른 국가에서는, 교회, 고아원 그리고 가족들이 유태인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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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출
  • 로츠 게토

    애니메이션 지도

    로츠는 전쟁 전 폴란드에서 바르샤바에 이어 두 번째로 큰 유태인들의 거주지였다. 1939년 9월 독일군이 로츠를 점령했다. 1940년 2월초, 독일군은 로츠에 게토를 세우고 약 1.5 평방 마일의 구역에 15만명 이상의 유태인들을 몰아 넣었다. 1941년과 1942년에는 약 4만명의 중부 유럽 유태인들과 5,000명의 로마니(집시)들도 게토로 강제 이주되었다. 1942년 1월부터 9월 사이에 7만 5,000명 이상의…

    로츠 게토
  • 아우슈비츠

    애니메이션 지도

    아우슈비츠 수용소는 유럽 전역의 유태인들을 말살하고자 하는 나치 독일의 계획인 “최종 해결”의 실행에 중심 역할을 하였다. 나치는 유럽의 거의 전 지역의 유태인을 점령지인 폴란드에 세운 아우슈비츠 II(비르케나우)로 이송하였다. 총괄적으로 적어도 1,100,000명의 유태인들과 수만 명의 다른 사람들에 아우슈비츠에서 죽어갔다.

    아우슈비츠
  • 저항

    애니메이션 지도

    나치의 테러에 맞서서 많은 유태인들은 독일과 그 협력자들에게 저항하는 운동을 전개하였다. 지하 레지스탕스 운동은 나치가 점령한 동부 유럽의 100여 개소 이상의 게토에서부터 발전하기 시작했다. 더 나아가, 가장 불리한 조건 하의 몇몇 나치 수용소에서도 유태인 수감자들은 그 저항의 맥을 이어갔다. 유태인들은 프랑스, 벨기에, 우크라이나, 벨로루시, 리투아니아 그리고…

    저항
  • 제2차 세계대전과 홀로코스트

    애니메이션 지도

    홀로코스트는 1933년부터 1945년 사이에 독일 나치와 그 협력자들이 국가의 비호 아래 조직적으로 유럽의 유태인들을 박해하고 학살한 사건을 말한다. 유태인들이 주요 희생자들 이었으며 600만명이 학살되었다. 로마니(집시), 육체적 및 정신적 장애인들, 그리고 폴란드인 등도 인종, 민족 또는 국적을 이유로 파괴와 학살의 대상이 되었다. 동성애자, 여호와의 증인, 소련군 전쟁 포로,…

    제2차 세계대전과 홀로코스트
  • 홀로코스트

    애니메이션 지도

    홀로코스는 제 2차 세계대전 중 나치와 그 협력자들이 6백만 명에 달하는 유태인과 백만 명에 달하는 기타 인종을 대량으로 학살한 사건을 말한다. 대량 학살은 1941년 6월 독일의 소련 침공 과정에서 유태인을 총살한 사건으로부터 시작되었다. 1941년 말, 독일은 폴란드 점령지의 대량 학살 수용소로 유태인들을 이동시키기 시작하였다. 1945년 5월에는 유럽에 거주하던 유태인들이 약…

    홀로코스트
  • 홀로코스트의 여파

    애니메이션 지도

    연합군은 연속되는 나치 독일의 공격을 뚫고 유럽으로 진군하면서 강제수용소에 이르게 될 때마다 이들 수용소들을 해방 시켰다. 강제 수용소의 죄수들은 죽음의 행군에서 살아남아 독일 내부로 이동하였다. 그러나 해방 이후에도 대부분의 유태인 생존자들은 동유럽으로 귀환할 수 없었거나 귀환하고자 하지 않았는데, 이는 반 유대주의와 홀로코스트 기간 동안 지역사회 삶의 터전이…

    홀로코스트의 여파
  • 전쟁 전 독일의 유대인들

    기사

    전쟁 발발 전 독일의 유태인들 유대인들은 독일에서 중세시대부터 거주하고 있었다. 이들은 이곳에 수백 년 동안 유럽 각국의 사회들처럼 광범위한 박해를 받았다. 독일의 유대인들은 19세기에 기독교인들과 같은 법적 권한을 받게 되었다. 따라서 1933년 나치 집권 당시 독일의 유대인들은 이미 독일 사회에 동화되어 있었다. 그래도 유대인들은 나머지 독일 사회에 구별할 수 있는…

    전쟁 전 독일의 유대인들
  • 유대인 상업 불매운동

    기사

    유대인 불매운동(Judenboykott)은 나치 정권의 첫 반유대정책이었다. 토요일 4월 1일 1933년에 벌어졌다. 이날에 독일인들은 나치당이 유대인들과 관련된 기업이나 상업의 제품들을 구매하면 안되었다. 유대인 의사와 변호사의 사무실들도 방문 하면 안되었다. 나치들은 왜 불매운동을 벌었는가? 나치 대변인은 불매운동의 목적은 두 집단을 대상으로 한 복수라 주장하였다: 독일계…

    유대인 상업 불매운동
  • "수정의 밤(크리스탈나흐트)": 전국적 프로그램

    지도

    크리슈탈나하트(문자적으로 해석하면 "수정의 밤")은 일반적으로 "산산조각이난 유리의 밤"이라고 번역된다. 이것은 1938년 11월 9일과 10일에 발생한 폭력적 반유태주의 프로그램을 의미하는 말이다. 이 프로그램은 독일 전역에서 발생했는데, 이후 오스트리아와 체코슬로바키아 수데텐란트 지역까지 확산되었다. 독일 제국 전체에 걸쳐 수백개의 유대교 회당들이 공격을 받고, 훼손되고,…

    태그: 독일 포그롬
    "수정의 밤(크리스탈나흐트)": 전국적 프로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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