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0년 시몬느 바일(Simone Weil)은 스트라스부르그의 사회 복지 학교에서 프랑스 유치원 교사 자격증을 받았다. 1943년 말, 바일은 구조 구호 기관인 아동 원조 협회(Oeuvre de Secours aux Enfants, Children's Aid Society, OSE)의 일원으로 활동하기 위하여 위조 신분증을 취득하였다. 바일의 새로운 신분을 증명하는 서류에는 그녀의 이름이 “시몬느 베를린(Simone Werlin)”이라고 표기되어 있다.
1943년 말, 위조 신분증을 획득한 뒤, 시몬느 바일은 시몬느 베를린이라는 이름이 새겨진 1938-1939년도 학생증까지 위조하였다. 학생증에는 스트라스부르그의 사회 복지 학교 재학생으로 표기되어 있다. 이러한 위조 서류와 신분증을 사용하여 바일은 프랑스의 샤또후로 이주하여 구조 구호 기관인 아동 원조 협회(Oeuvre de Secours aux Enfants, Children's Aid Society, OSE)의 회원으로 활약하면서…
1939년 2월 24일, 독일 빙겐에 사는 알리스 “사라” 마이어(Alice "Sara" Mayer)에게 발행된 독일 여권 마이어의 딸인 엘렌(Ellen) 역시 여권에 명시되어 있다. 어머니와 딸의 이름 둘 다 가운데에 “사라(Sara)”라고 명시되어 있다. 이러한 가운데 이름의 첨가는 1938년 8월 17일 이후로 법에 의해 의무 사항이 되었다. 그러므로 “비 유태인” 이름을 가진 유태인 여성은 모든 공식 문서에 중간…
1939년 7월 8일, 독일 경찰 당국은 이 여권을 베를린의 에르나 “사라” 쉴레징거(Erna "Sara" Schlesinger)에게 발행하였다. 여권의 첫 번째 페이지에는 독일 내 유태인 신분 확인을 용이하게 했던 독일 법이 나와 있다. 1938년부터 독일 규정은 “비 유태인” 이름을 가진 유태인 여성은 모든 공식 문서에 중간 이름으로 “사라”를 사용하여야 한다고 규정하였다. 유태인 남자는 그들의 이름에…
시몬느 바일(Simone Weil)은 “시몬느 베를린”으로 행세해야 할 필요가 있을 때, 이 빈 신분증 카드에 그녀의 사진을 붙여 위조 신분증을 만들었다. 그녀에게 필요한 도장과 서명은 레지스탕스 관계자와 그녀에 동조하는 정부 관리들이 제공하였다. 이러한 위조 서류는 바일이 구조 구호 기관인 아동 원조 협회(Oeuvre de Secours aux Enfants, Children's Aid Society, OSE)의 회원으로서 유태인 아동을…
나치 "안락사" 프로그램으로해 죽은 사상자 수를 추정하기 위해서 쓰인 가장 중요한 문서들 중 하나는 1945년 학살 장소인 오스트리아에 있는 하트하임에서 미육군부대가 잠겨진 서류 캐비닛에서 발견한 등록 문서이다. 오른쪽 사진은 1940년 매달 소위 말하는 "소독"된 사람들의 숫자를 자세히 기록하고 있다. 이 기록의 마지막 난은 그해에 35,224명의 사람들이 죽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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