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다순으로 정렬된 사진 자료들은 제2차전과 홀로코스트와 관련한 인물, 장소와 사건들을 묘사합니다.
나치 경찰이 폴란드로 이송할 로마니(집시) 가족을 비엔나에서 체포한다. 오스트리아, 1939년 9월-12월.
나치 독일의 유태인 난민을 논의하기 위한 에비앙 회담의 장소인 로얄 호텔. 프랑스, 에비앙, 1938년 7월.
나치 돌격대(SA)가 그들이 점거한 노동 조합 건물의 입구를 봉쇄하고 있다.SA 파견대는 전국적으로 노동 조합을 점거하고 조합을 강제 해산 했다. 독일, 베를린, 1933년 5월 2일.
트럭에 붙은 나치 돌격대(SA)의 문구 "독일인이여! 자신을 보호하라. 유태인에게서 물건을 사지마라". 독일, 베를린, 1933년 4월 1일.
나치 선전 선동부 장관 요제프 괴벨스가 언론과 예술에 관하여 직원들에게 연설을 하고 있다. 독일, 베를린, 1936년 11월.
나치 안락사 프로그램 희생자: 순응적이지 않은 믿음과 저술로 인하여 정신병동에 수감되었다가 1944년 1월 26일 안락사되었다. 독일, 날짜 미상.
나치 영화의 반 유태주의 장면 독일어 자막을 번역하면 “중세 시대에는 이방인인 유태인에게는 시민권이 없었다. 그들은 게토라고 하는 제한된 구역에 거주해야 했다.”라고 씌어 있다. 날짜, 장소 미상
나치는 올림픽 준비에 거액의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위 사진에서 독일관료가 축소 모형을 사용하여 올림픽 선수촌의 규모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다. 1936년 7월, 독일, 베를린
나치당 전당 대회에서 히틀러 앞을 행진하는 제3제국 노동 부대 대대 퍼레이드. 독일, 뉘른베르그, 1937년 9월 8일.
나치와 라트비아 민병대 일원이 유태인에게 옷을 벗으라고 명령한 다음, 참호에서 총살했다. 라트비아, 리예파야 근교 , 1941년 12월.
나치의 눈을 피해 하설트 인근 루비크의 도미니크 수녀원에 은신한 6명의 유태인 소녀들. 벨기에, 1942년 10월부터 1944년 10월 사이.
나치의 반 유태주의 전시회 “Der ewige Jude” (방랑하는 유태인) 전시물. 이 전시회는 유태인이 독일을 심각하게 점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주장하기 위한 것이었다. 전시물의 맨 위 문구는 “뻔뻔스러운 여흥”이라고 쓰여있다. 1938년 11월 11일, 독일, 베를린
나치의 발행물중 가장 인기가 많았던 돌격대(Der Stürmer)의 첫장, 유태인이 종교의식으로서 살인을 저지른다고 알려진 중세의 서술을 싣고있다.
나치의 선전은 종종 유태인을 전쟁을 일으키는 음모론의 주인공으로 묘사하곤 하였다. 이 그림에는 영국, 미국 그리고 소련 국기 뒤에서 연합국을 조정하는 음모를 꾸미는 전형적인 유태인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자막에는 “적국의 배후에는 유태인이 있다.”라고 쓰여 있다. 시르카, 1942년.
나치의 월간지 새로운 민족(Neues Volk)의 선전 포스터. “국가적 사회”의 관점에서 볼 때 소외된 대상은 단지 유태인만은 아니었다. 나치 통치는 지적, 육체적 장애가 있는 사람도 소외시켰다. 새로운 민족을 선전하는 이 포스터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국가 사회는 유전적으로 병약한 사람에게 평생 60,000 독일 마르크의 돈을 써야 합니다. 시민 여러분, 이것은 여러분의 돈 입니다.” …
네덜란드로 도피하기 전의 마고(Margot)와 안네 프랑크(Anne Frnak) 독일, 바트 아헨, 1933년 10월.
“뉘렌베르거” 신문의 호외를 읽고 있는 거리의 시민들. 신문 기사는 국제 군사 재판의 판결에 대하여 다루었다. 1946년 10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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