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계 유태인 난민의 수난, 고국에서 박해 받고 원치 않는 해외 망명을 선택한 SS”세인트 루이스”호의 항해가 표현되어 있다. 1939년 5월 13일, 독일 여객선 SS “세인트 루이스”호는 거의 천여 명의 유태인 난민을 싣고 독일을 출발하였다. 난민들의 목적지는 쿠바였다. 그러나 그들이 도착하기도 전에 쿠바 정부는 그들의 하선 허가를 철회하였다. 그리하여 1939년 6월, “세인트…
나치 통치에 있어서 “안락사(Euthanasia)”란 유전병이나 장애로 인하여 나치가 독일인 중에서 “가치없는 생명”이라고 판정한 사람들을 체계적으로 죽이는 것을 의미하였다. 1939년 가을부터 베른버르그, 브란덴버르그, 하다마르, 하르타임과 소넨슈타인에 가스실이 세워졌다. 의사나 병원으로부터 선발된 환자들은 이러한 중앙 가스실로 보내져 살해되었다. 이러한 중앙 집중적 학살이…
1941년부터 1943년 사이, 지하 레지스탕스 운동은 나치가 점령한 동부 유럽의 100여 개소 이상의 게토에서부터 발전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주요 목표는 폭동을 조직하고 게토를 탈옥하고 독일에 대항하여 싸우는 빨치산 운동에 가담하는 것이었다. 유태인들은 폭동이 독일의 탄압을 중단시키지 못하며 소수만이 탈출하여 빨치산 운동에 가담하게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독일 최초 집단 수용소는 히틀러(Hitler)가 집권을 시작한 직후인, 1933년 1월에 세워졌다. 돌격 부대(Storm Troopers, SA)와 경찰은 제국을 위협하는 정치범으로 체포된 많은 사람들을 수용하기 위하여 수용소를 세웠다. 이러한 수용소들은 독일 전역에 걸쳐 지역 단위로 설립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초기의 수용소들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차츰 해체되고, 대신에 SS(Schutzstaffel, 나치 친위 대)의…
독일 최초의 집단 수용소들은 아돌프 히틀러가 수상으로 임명된 1933년 1월 직후부터 세워졌다. 나치 돌격대(SA)와 경찰은 1933년 2월부터 집단 수용소들을 세우기 시작했다. 이러한 수용소들은 정치적 반대 세력으로 의심되는 사람들을 대량으로 수용하기 위해 세워졌다. 이러한 수용소들은 독일 전역에 걸쳐 지역 단위로 설립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초기의 수용소들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1939년 9월, 제2차 세계대전 발발 후 강제 노동력이 전쟁 물자 생산의 주요 수단으로 등장하면서 나치의 수용소 시스템은 빠른 속도로 확장되었다. 1942년과 1943년에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독일군이 패한 이후, 독일 전쟁 경제에서 노동력 부족은 심각한 상태에 이르렀다. 이는 더 많은 집단 수용소 수감자들을 독일 군수품 생산에 투입하는 상황으로 이어졌다. 특별히 1943년과 1944년에는…
1940년, 독일은 덴마크를 점령하였다. 1943년 8월, 독일이 덴마크의 유태인을 이송하기로 결정하였을 때 덴마크인들은 자발적으로 구조단을 조직하여 유태인들이 해안으로 도피하도록 도와주었다. 어부들은 배로 그들을 중립국 스웨덴으로 탈출시켰다. 구출 활동은 덴마크 레지스탕스, 경찰 그리고 정부의 참여로 더욱 확대되었다. 약 3주 이상의 기간 동안 덴마크인들은 배를 이용하여…
제1차 세계대전 독일의 패배. 1919년 베르샤유 조약에서, 승전국(미국, 영국, 프랑스 및 기타 연합국)은 패전국 독일에 대해 징벌적인 영토, 군사 및 경제 제제 조항을 시행했다. 유럽 서부에서, 독일은 알자스로렌 지방을 프랑스에 반환했다. 이것은 40년 이상 전부터 독일에 의해 점령되었던 곳이었다. 또한, 벨기에는 외펜과 말메디 지역을 돌려 받았다. 산업용 자르 지역은 국제 연맹이…
독일이 점령한 유럽 지역 전역에서 독일은 유태인들을 검거하여 점령폴란드의 대량 학살 수용소로 이동시키기 시작하였다. 어떤 유태인들은 은신처에 숨거나 독일 점령 유럽 지역을 탈출하는 방법으로 살아남았다. 점령된 유럽을 탈출하는 경로는 (소련과 같은) 교전 국가로 향하거나 (스위스, 스페인, 스웨덴, 터키와 같은) 중립국으로 향하거나 (이탈리아 또는 독일에게 점령당하기…
1933년, 아돌프 히틀러(Adolf Hitler)가 정권을 잡았을 때 독일은 잠재적으로 유럽의 강대국 중 하나가 되었다. 히틀러는 제1차 세계대전 후에 체결된 베르사이유 조약의 잔여 군대 및 영토 조항을 뒤집기로 결정했다. 히틀러는 제국 내에서 독일어를 하는 인구를 강력한 독일의 재건과 유럽에서의 독일 제국의 창조를 실현할 원동력으로 보았다. 독일어를 하는 인구는 주로 오스트리아,…
1933년과 1939년 사이, 독일계 유태인들은 체포의 대상이 되거나, 경제적으로 소외되거나, 권리와 시민권을 박탈당하거나, 집단 수용소에 투옥되거나, 무차별 폭력을 당하거나, 정부가 주도하는 수정의 밤(“깨진 유리의 밤”) 학살의 대상이 되었다. 이러한 나치의 탄압에 유태인들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대응하였다. 독일 사회로부터 강제 격리된 독일계 유태인들은 자신들만의 학교와…
제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은 유럽에서 일련의 군사 행동을 통하여 적들을 물리쳤다. 독일은 매우 빠르게 유럽을 지배하기 시작했고, 이 년 이상 승리만을 거두었다. 독일은 폴란드(1939년 9월 공격), 덴마크(1940년 4월), 노르웨이(1040년 4월), 벨기에(1940년 5월), 네덜란드(1940년 5월), 룩셈부르크(1940년 5월), 프랑스(1940년 5월), 유고슬라비아(1941년 4월), 그리고 그리스(1941년 4월)를 공격하여…
1942년, 독일은 유럽의 대부분을 지배했다. 독일 제국은 이웃 국가들의 희생을 발판으로 확장되었다. 오스트리아와 룩셈부르크는 완전히 점령되었다. 체코슬로바키아, 폴란드, 프랑스, 벨기에 및 발틱 국가 등의 영토도 독일 제국이 점령했다. 독일군은 노르웨이, 덴마크, 벨기에, 프랑스 북부, 세르비아, 그리그 북부 일부, 그리고 동유럽 영토의 방대한 지역에 주둔했다. 이탈리아,…
수많은 장애에도 불구하고 독일군이 점령한 유럽의 많은 유태인들은 독일에 대항하여 무장 저항 운동을 펼쳐나갔다. 유태인들은 개인적으로 또는 조직을 결성하여 독일과 그 연합 세력들에 즉흥적 또는 계획적으로 항거하였다. 유태인 빨치산 운동은 특별히 동유럽 지역에서 활발히 진행되었는데, 이 지역의 유태인들은 후방 지역의 숲속이나 게토를 근거로 하여 독일과 투쟁하였다.…
아인자츠그루펜(Einsatzgruppen, 이동 학살 부대)은 주로 SS 부대원과 경찰로 구성된 독일의 특수 부대로서 유럽에 거주하는 유태인들을 학살하는 프로그램을 수행하는 특수 임무를 부여받은 부대를 말한다. 1941년 6월 소련 침공 시, 이동 학살 부대원들은 독일군과 함께 소련 지역의 깊숙한 곳까지 침투하여 유태인에 대한 대량 학살을 자행하였다. 이동 학살 부대는 가는 곳마다 유태인…
로마니(집시)는 나치 통치에 의하여 인종적으로 차별 받고 탄압받은 집단 중 하나였다. 로마니들은 억류, 수송 및 강제 노동의 대상이 되었다가 집단 학살 수용소로 보내졌다. 아인자츠그루펜(이동 대량 학살 부대) 역시 독일이 점령한 동부 지역에서 수만 명의 로마니들을 살해하였다. 로마니의 운명은 유태인들과 거의 흡사하였다. 홀로코스트 기간 동안 희생된 로마니의 숫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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