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 페퍼

안나 페퍼

출생: 1885년 11월 19일

독일, 프랑켄탈

가족들에게 앤첸이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안나는 독일계 유태인 부모에게서 태어난 딸이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그녀가 어릴 때 죽었으며 안나는 브루흐잘에서 가난한 어머니의 손에 자랐다. 1905년 안나는 유복한 노신사와 결혼을 해서 남편이 백화점 관리자로 있는 패션의 도시 뒤셀도르프로 이사했다. 1933년 이들은 두 명의 장성한 아들을 두고 있었다.

1933-39: 나치가 세력을 잡은 후에 페퍼의 편안한 삶이 무너졌다. 나치는 안나의 남동생을 체포해서 집단 수용소로 보내는데, 여기에서 그는 학살되었다. 네덜란드 여성과 결혼한 안나의 큰 아들은 네덜란드로 이민을 갔다. 그녀의 남편이 일자리를 잃고 1938년 11월 대학살이 발생하자 페퍼 가족도 네덜란드로 이민을 갔다. 여기에서 이들은 큰아들과 며느리를 만났다.

1940-44: 안나의 남편이 세상을 떠나고, 그녀는 암스테르담에서 손자와 함께 시간을 보냈다. 1940년 5월 독일군은 네덜란드를 점령했다. 유태인은 등록하도록 명령을 받았고 이들의 권리도 축소되었다. 다른 유태인과 마찬가지로, 안나는 소유한 모든 재산을 잃었다. 유태인을 식별하는 노란색 배지를 착용하도록 요구를 받은 지 1년이 지난 후에, 그녀는 가족과 떨어져서 유태인을 위한 임시 수용소인 웨스터보크로 이송되었다. 4개월 후 그녀는 체코슬로바키아의 테레지엔슈타트 게토로 이송되었다.

1944년 10월 9일, 안나는 테레지엔슈타트에서 아우슈비츠로 이송되고, 여기에서 2일 후에 가스실로 보내졌다. 그녀의 나이 58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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