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호이만
출생: 1898년 7월 12일
독일, 헬렌탈
칼은 벨기에 국경 인근의 마을에 거주하던 유태인 부모에게 태어난 9명의 자녀 중 하나였다. 칼은 26세 되던 해에 요안나 플켄슈타인과 결혼해서 아버지의 목장 건너편의 집에 거주했다. 칼은 집의 1층에 작은 상점을 운영했다. 이들 부부에게는 마르고트와 로리라는 두 명의 딸이 있었다.
1933-39: 나는 내가 유태인 구호 단체를 위해 일하던 빌레펠트로 우리 가족을 이주시켰다. 독일 전역에서 나치당원이 유태인 상점의 창문을 부수고 회당을 불질렀던 지난 11월의 밤[깨진 유리의 밤] 이후, 이 지역의 유태인에게 독일을 떠나라는 요구가 거세졌다. 불행하게도 미국과 기타 국가들은 이민자 수를 제한하고 있기 때문에 극히 일부분의 유태인 난민만 비자를 받을 수 있다.
1940-44: 우리는 체코슬로바키아에 있는 테레지엔슈타트 게토로 이송되었다. 나는 세1차 세계대전에서 독일 철십자 훈장을 받았기 때문에 동쪽으로 더 멀리 떨어진 집단 수용소가 아니라 이곳에 보내진 것만으로도 특별한 혜택을 받은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수용소로 이송될 위험이 매일 도사리고 있었고, 우리는 항상 배고팠다. 15세 딸 마르고트는 매일 게토를 떠나 농장에서 일하는 일에 배정 받았다. 딸은 때때로 브라우스 밑에 야채를 몰래 숨겨서 가지고 들어오고는 했다.
1944년 5월, 칼은 음식을 훔치다가 잡혀서 그와 그의 가족은 모두 아우슈비츠로 이송되었다. 마르고트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이 곳에서 처형된 것으로 알려졌고, 마르고트는 전쟁에서 살아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