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전, 반 유태주의가 기승을 부릴 무렵, 헤시(Hessy)의 가족은 독일을 떠나 프랑스 파리로 이주하였다. 1940년 6월, 프랑스가 독일에 함락되었다. 헤시의 가족은 프랑스 남부의 “존 리브레”(자유 지역)로 은밀히 탈출하였다. 1941년에 가족은 미국 비자를 받았다. 그러나 그 비자의 유효기간이 만료되기 전에 떠날 수가 없었는데, 기간 연장도 받지 못했다. 헤시 가족은 1942년에 쿠바 비자를 받아 쿠바로 갔다가 1949년에 미국으로 이주하였다.
우리는 우리를 데리고 존 리브레[자유 지역]으로 데려다 줄 그룹을 만났습니다. 그 당시 니스는 아직 존 리브레였습니다. 우리는 파리에서 다른 사람들도 만났습니다. 우리 친구들도 만나고…이 그룹에는…그리고 우리는 한 지점에서 트럭을 타고 다른 지점으로 가고 또 숲도 통과하고 늪 지대도 통과하고..그리고 아주 아주 조용히 통과해야 했습니다. 왜냐하면 숲 뒤에 독일군 진지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길이 끝나는 곳에, 거기에는 또 다른 트럭이…우리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음…저는 그 당시에는 그런 자세한 상황들은 잘 몰랐습니다. 제가 아는 것이라고는, 큼지막한 칼을 벨트에 찬 아주 무섭게 생긴 프랑스 사람이 칼을 꺼내서 아이들에게 입만 열었다간 혓바닥을 칼로 자르겠다고 으름장을 놓은 것입니다. 그 순간은 정말 잊을 수가 없어요. 저는 탈출하는 내내 입술을 아주 꽉 다물었지요. 한 번만 제외하고요. 그 땐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제 손을 잡고 가시던- 아버지의 친구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우리가 지금 뭐하고 있는 건가요?” 그분이 말씀하셨죠. “우리는 지금 운동을 하고 있단다. 우리는 달리기를 하고 있어. 이건 운동이야.” 저는 말했죠. “저는 이 운동이 싫어요.” 그리고 저는 칼을 든 사람을 쳐다봤습니다. 그리고 입을 다물었죠. 아기들과 아이들-제 여동생인 노에미(Noemi)까지 포함해서-은 모두 쵸콜렛을 먹었습니다. 어른들은 아이들을 조용히시키기 위해서 전쟁 중에 모을 수 있는 쵸콜렛은 전부 모으신 것입니다. 우리가 존 리브레에 도착하자마자 아버지는 즉시 미국 이민을 신청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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