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쥬디와 가족은 코브노로 이사했다. 이들은 얼마 되지 않아 독일군이 1941년 8월에 만든 코프노 게토에 감금되었다. 쥬디, 그녀의 자매, 그리고 어머니는 스튜트호프로 이송되었는데, 여기에서 어머니는 사망했다. 쥬디와 그녀의 자매는 스튜트호프에서 시작된 죽음의 행진에서 탈출했다. 이들은 유태인이 아닌 행세를 하면서 농장일을 했고 덴마크에서 최종 피난처를 찾았다. 이들의 형제는 다하우에서 살아 남았다.
스튜트호프에 도착했던 때를 기억해요. 가장 끔찍한 장면은 신발과 안경만 쌓여 있는 것었습니다. 어마어마한 신발 더미를 보고는 어머니에게 물었습니다. "이게 뭐죠?" 어머니는 대답했습니다. "Frage nicht 'ne Frages"[묻지마]. 저는 이디시어로 "묻지마. 뭘 그리 많이 물어보니? 나도 몰라"를 기억하고 있어요. 우리는 다시 소집(Appell)을 당했는데, 지금 기억으로는 머리를 롤처럼 말아 올린 매우 뚱뚱한 여자가 주변을 돌아다니면서, 뭐라고 하나...채찍, 그래 'konuiszck', 채찍을 휘두르면서 다녔는데 "여기서는 아무도 살아 못나가. 너희들은 모두 죽은 목숨이야"라고 말했습니다. 그녀는 폴란드어와 러시아어로도 말했는데, 우리 중 상당수는 러시아어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이해할 수 있었어요. 그 다음에는 한 장소로 끌려 갔는데, 거기에서 신체 검사를 받았습니다. 한 명이 저의 질 속에 손을 넣었다가 그냥 뺐어요.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금을 찾고 있었던 거에요. 잊을 수 없는 여성이 있어요. 앞에 두 사람과 마찬가지로 금니를 뽑혀서 입에 피를 철철 흘리던 여성이었죠. 그리고는 주사를 맞은 기억이 있는데, 무슨 주사인지는 아직도 몰라요. 음...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왜인지 질문을 하면 알게 되는 거죠. 그 이유는 생리를 하지 못하도록 주사를 맞힌 거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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