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전당 대회에서 히틀러 청년당의 회원들이 무명의 용사를 기리기 위해 스와스티카의 대형으로 퍼레이드를 하고 있다. 독일, 1933년 8월 27일.</p>

히틀러 청소년단

나치당은 독일 사회의 모든 측면에 영향력을 확대하려고 노력했다. 히틀러 청소년단과 독일 소녀 연맹은 어린이와 청소년에게 나치 이념과 정책을 소개하기 위한 나치당 청소년 단체로 시작되었다. 이 청소년 단체는 독일의 젊은이들을 전쟁에 대비시킬 목적으로도 사용되었다.

중요 사실

  • 1

    1930년대 나치 제국은 독일의 다른 모든 청소년 단체를 폐지했다.

  • 2

    1939년에 자격을 갖춘 청소년 (10~18 세)의 82% 이상이 히틀러 청소년단에 속해 있거나 이에 상응하는 소녀들은 독일 소녀 연맹에 속해 있었다.

  • 3

    소녀들이 미래의 아내와 어머니로서 준비하는 동안 소년들은 군사 훈련에 참여했다. 치열한 접전을 벌이던 최종 몇 달 동안, 10 대 초반의 소년들은 독일 민방위와 시민군 (Volkssturm)이라고 하는 수비 민병대에 차출되어 복무했다.

히틀러 청소년단 (Hitlerjugend, 또는 HJ)은 나치가 조직한 청소년 운동이었다. 남학생들과 여학생들을 다른 구역으로 분리하여 구성되었다. 소년 지부는 그냥 히틀러 청소년단이라고 불렸다. 소녀 지부는 독일 소녀 연맹 (Bund Deutscher Mädel, BDM) 이라고 불렀다.

1933 년 1월 나치가 집권했을 때 히틀러 청소년단 운동에는 약 10 만명의 회원이 있었다. 같은 해 말까지 회원 수는 200만명 이상으로 증가했다 (10~18세 독일 청소년의 30%). 이후 수 년간 나치 정권은 젊은이들에게 히틀러 청소년단 단체에 가입하도록 장려하고 압력을 행사했다. 열정, 친구의 압박, 그리고 강압을 통해 회원 수가 크게 증가되었다. 1937 년까지 히틀러 청소년단의 회원 수는 540만명 (10~18세 청소년의 65%)으로 증가했다. 1940 년에는 720 만명 (82%) 이었다.1  

무엇보다도 유대인들은 이 조직에 가입할 수 없었다. 유대인 청소년들은 1930 년대 독일에서 자체적인 청소년 단체를 만들었다. 

나치 통치 전 청소년 운동

히틀러 소년단원

스카우트 및 청소년 운동은 19 세기 말과 20 세기 초부터 독일에서 인기를 끌었다. 1933 년 나치가 독일에서 집권했을때 많은 정치적, 사회적, 종교적 청소년 단체가 존재했다. 청소년 단체는 스카우트 유니폼을 입는 경우가 많았다. 

이러한 청소년 단체 중 하나가 나치당에 소속된 히틀러 청소년단 이었다. 원래 히틀러 청소년단은 소년을 위한 나치 청소년 단체였다. 성인으로 구성된 나치 준 군사 조직인 돌격대 (Sturmabteilung, SA)를 모델로 한 것이었다. 히틀러 청소년단은 나치당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준 군사 조직이었다. 

이 조직은  1922 년 3 월 나치당 청년 연맹 (Jugendbund der NSDAP) 으로 시작되었다. 나치가 1923 년 11 월 맥주홀 폭동으로 독일 정부를 전복시키려고 시도한 후 정부는 일시적으로 나치 조직을 금지시켰다. 이러한 금지 조치에는 청소년 연맹이 포함되었다. 그러나 청소년 운동은 비밀리에 계속되었으며, 특히 1924 년에 설립된 대 독일 청소년 운동 (Greater German Youth Movement)으로 이어졌다. 1926 년 7 월 금지령이 해제된 후, 나치당의 공식 청소년 조직은 히틀러 청소년단, 독일 노동자 청소년 연맹 (Hitler-Jugend, Bund deutscher Arbeiterjugend)이 되었다. 이 조직은 공식적으로 SA에 통합되었다. 

나치 청소년 조직

1930년대 초에 나치당은 인기를 얻게 되면서 영향력을 높이고 독일의 청년들에게 다가가기를 원했다. 이들은 히틀러 청소년단에 소년과 소녀 모두를 포함하도록 확장했다. 1931년까지 성별과 연령별로 4개의 구역이 조직되었다. 

  • 10~14세 소년들을 위한 독일 소년단 (Deutsches Jungvolk
  • 10~14세 소녀들을 위한 소녀 연맹 (Jungmädelbund)
  • 14~18세 소녀들을 위한 독일 소녀 연맹 (Bund Deutscher Mädel 또는 BDM)
  • 14~18세 소년들을 위한 히틀러 청소년단 (Hitlerjugend)

나중에 나치는 17~21세의 젊은 여성들을 위해 독일 소녀 연맹의 자발적인 산하단체인 믿음과 아름다움 (Glaube und Schönheit) 이라고 하는 조직을 만들었다. 

1931년 이러한 4가지 지부로 구성된 전체 히틀러 청소년단 운동을 발두르 폰 쉬라흐 (Baldur von Schirach)가 지휘하게 된다. 1940년 후반 그는 비엔나에서 나치당의 수장 (Gauleiter)이 되었지만, 청소년 운동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했다. 그의 후임자는 히틀러 청소년단 지도자인 27세의 아르투어 악스만 (Artur Axmann) 이었다. 

독일 청소년의 나치화 

히틀러 청년당 교육 프리젠테이션에 씌인 나치 선전 슬라이드.

나치 정권에서 히틀러 청소년단의 역할

1933년부터 히틀러 청소년단과 독일 소녀 연맹은 신 나치 정권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나치 정권은 이러한 조직을 통해 젊은이들에게 나치 이데올로기를 주입할 계획이었다. 이것은 독일 사회를 나치화하는 과정의 일부였다. 이 과정의 목적은 기존의 사회 구조와 전통을 해체하는 것이었다. 나치 청소년 단체는 순응을 강요했다. 독일 전역의 청년들은 동일한 유니폼을 입고 똑같은 나치 노래를 불렀으며 비슷한 활동에 참여했다.

그룹이 이런 활동을 하게 된 목적 중 하나는 독일 젊은이들의 삶을 지배하기 위해 히틀러 청소년단 운동을 사용하는 것이었다. 조직에 소속되면 상당한 시간을 할애해야 했다. 히틀러 청소년단 회원들은 정기적인 모임과 행사에 참석해야 했다. 이로 인해 교회 및 학교와 같은 다른 우선 순위가 방해를 받았다. 

이렇게 시간을 많이 보내고 나치 이데올로기에 정기적으로 노출되면서 부모, 교사, 종교 지도자와 같은 사람이 말하는 목소리의 영향력이 약화되었다. 사실, 히틀러 청소년단과 독일 소녀 연맹은 회원들에게 학교, 교회 및 가정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에 대해 지도자들에게 보고하도록 권고하기도 했다. 

청년 운동 강화

나치 제국은 히틀러 청소년단이 모든 독일 청소년을 이끌기를 원했다. 그들은 다른 청소년 운동을 경쟁 상대로 보았다. 1933년 정치적인 청소년 단체는 빠르게 통합되거나 억압되었다. 그러나 비정치적이고 종교적인 청소년 단체는 1930년대까지 지속되었다. 청소년 단체의 해체와 통합은 사회 전반에 걸친 "동시통합" (Gleichschaltung), 또는 "조정"이라고 하는 과정의 일부였다.

1936년 히틀러 청소년단에 관한 법률은 "히틀러 청소년단은 제국 영토 내의 모든 독일 청소년들을 포함한다"라고 명시했다. 이 법을 통해 히틀러 청소년단은 모든 청소년 관련 문제에 대한 방향을 제시했다. 그러나 이러한 규정은 보편적으로 지켜지지 않았다.

1939년 3 월, 10~18 세의 모든 청소년들을 히틀러 청소년단에 가입시키도록 하는 새로운 법령이 내려졌다. 그 이후로 히틀러 청소년단은 나치 독일에서 유일한 합법적 청소년 운동이 되었다. 정권은 이 규정을 준수하지 않은 사람들을 처벌하겠다고 위협했다.

미래를 위한 청소년 준비

히틀러 소년 단원들이 지휘관인 발두르 폰 쉬라흐(우측, 경례하고 있는 사람)와 율리우스 슈트라이허를 비롯한 다른 나치 장교들 앞에서 행진하고 있다.

나치당은 청소년을 새로운 세계의 기초로 보았다. 청년들은 미래의 당원, 어머니, 군인이 될 사람들이었다. 따라서 나치는 그들을 "인민 커뮤니티" (Volksgemeinschaft)의 생존과 건강에 필수적이라고 보았다. 독일의 새로운 미래를 건설하기 위해 어린이들을 인종적인 인식을 가지고 신체적으로 적합하도록 가르치기를 희망했다. 미래의 상징인 히틀러 청소년단은 연례 뉘렌베르크 전당대회를 비롯하여 나치당 집회와 행진에 참석하는 경우가 많았다. 레니 리펜슈탈 (Leni Riefenstahl)의 영화 의지의 승리 (Triumph des Willens) 는 히틀러가 1934년 뉘렌베르크 전당대회에서 히틀러 청소년단들에게 연셜하고 인사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히틀러 청소년단

히틀러 청소년단은 준 군사 조직이었다. 그것은 나치 대의를 위해 소년들을 미래의 전사와 군인으로 훈련시키도록 고안된 것었었다. 나치 제국의 공식 조직인 히틀러 청소년단은 지방, 지역 및 국가 차원에서 군대 조직을 가졌다. 

소년들은 군사 훈련을 연습하고 무기를 다루는 법을 배웠다. 또한 여름에 농장에서 일하고 스포츠 경기, 특히 권투 시합에 출전했다. 소년들은 신체적 도전, 경쟁, 동지애를 즐겼지만, 전쟁을 준비하면서 억압받고 소외된 조국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활동에 끊임없는 초점을 맞춘 소년들도 있었다. 

독일 소녀 연맹 

독일 소녀 연맹은 소녀들이 미래의 아내와 어머니가 될 수 있도록 준비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소녀들은 체조와 같은 신체 활동에도 참여했다. 소녀들의 스포츠는 경쟁적이고 개인적이기보다는 집단적이고 통합된 활동인 경향이 많았다. 이러한 활동은 협력의 가치를 입증하는 역할을 했다. 소녀 연맹은 소녀들이 가정과 가족을 돌보도록 훈련시켰다. 소녀들은 바느질, 간호, 요리 및 가사와 같은 기술을 배웠다. 

반발하는 청소년

전당 대회에서 히틀러 청년당의 회원들이 무명의 용사를 기리기 위해 스와스티카의 대형으로 퍼레이드를 하고 있다.

나치 제국은 히틀러 청소년단 단체를 통해 동질적인 청소년 문화를 만들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일부 청소년은 참여를 거부했다. 경우에 따라 정치적 또는 종교적 이유가 있었다. 청소년기의 반항이나 개인주의에 근거한 거부도 있었다.

특히 대도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불법 청소년 단체는 히틀러 청소년단 문화를 거부했다. 이러한 청소년 단체는 순응과 군대를 싫어하는 경향이 있었다. 이들은 일반적으로 다양한 스타일의 옷을 입고 덜 체계적인 사회 활동에 참여했다. 많은 불법 청소년 단체는 소녀와 소년 모두를 위한 것이었다. 일부는 심지어 엄격한 히틀러 청소년단 조직에서 허용하는 것보다 좀더 자유로운 성별 역할을 장려했다. 

이러한 비공식적이고 대안적인 청소년 단체는 고유한 특성을 가졌다. 라이프치히 뮤텐 (Leipzig Meuten)은 공산주의에서 영감을 받은 반 나치 집단이었다. 거친 몸싸움을 벌이는 에델바이스 해적단 (Edelweiss Pirates)은 히틀러 청소년단 회원들과 충돌하는 경우가 많았다. 함부르크에서 가장 흔했던 대안 청소년 단체인 스윙 키즈 (Swing Kids)는 스윙 댄스와 재즈를 즐겼다. 그들은 긴 머리를 하고 미국식이나 영국식으로 옷을 입었다. 

이러한 반항적인 청년들은 게슈타포에게 체포되어 강제 수용소에 수감될 위험을 무릅써야 했다.

청소년 전쟁 동원

1939년 전쟁이 발발했을 때 히틀러 청소년단은 전쟁에 맞서 싸우고 외국 영토를 점령할 젊은 세대를 이미 준비시킨 상태였다. 1930년대 초 히틀러 청소년단에 합류한 청년들은 실용적인 기술과 나치 사상을 배웠다. 이미 18세가 된 사람들은 배운 지식을 사용하여 독일 전쟁을 도왔다. 그들은 군인, 경찰관, 비서, 간호사, 의사로 일했다.

다음 세대의 히틀러 청소년단 회원들은 군대와 다른 나치 조직에 가입하기에는 아직 너무 어렸다. 그러나 그들도 전쟁에서 역할을 담당했다. 히틀러 청소년단과 독일 소녀 연맹은 전쟁 관련 구호 활동에 참여했다. 전선에서 군대가 사용할 보급품을 정리하는 일을 도왔다. 

나이가 있는 소년 소녀들은 전쟁 전후에 독일이 합병한 일부 영토에 배치되기도 했다. 나치는 전쟁 전 독일 국경 밖에 살고 있던 독일 민족이 다시 독일화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히틀러 청소년단은 이러한 지역 사회에서 독일어와 기타 독일 문화 전통을 가르쳤다.

종전

독일 나치의 패퇴, 1942년-1945년

나치 독일이 전쟁에서 패하고 있는 사실이 분명하게 되면서 나치 정권은 인력 부족에 직면했다. 연합군의 공습으로 독일 도시의 대부분이 파괴되었다. 이로 인해 물류 문제가 발생하고 주택 및 공급 부족이 악화되었다. 공습이 있는 경우에 정권은 십대들에게 고사포를 쏘게 하였다. 전후에 청소년들은 전쟁으로 인한 폐허에서 다양한 구호 활동을 통해 피난민을 도왔다. 소녀들은 무료 급식소에서 일하고 집을 잃은 사람들을 도왔으며 간호사 보조원으로 봉사했다.

1943년 무장친위대 (Waffen-SS)는 히틀러 청소년단으로 구성된 특별 사단을 만들었다. 이 사단은 1926년에 태어난 소년들로 구성되었다 (1943년에 16세 또는 17세가 됨). 사단은 처음에 프랑스에 배치되었다. 그곳에서 캐나다 전쟁 포로들을 상대로한  아르덴 수도원 (Ardenne Abbey) 학살과 같은 여러 학살을 자행했다. 또한 이 사단은 에스크 (Ascq) 학살로 알려진 프랑스 남성에 대한 보복 살해를 자행했다. 이 청소년들은 프랑스 노르망디 전투와 벨기에 발지 전투에서 연합군과 싸웠다.

종전 전 몇 달 동안, 16 세에서 60 세 사이의 남성들은  문자 그대로 인민 폭풍 (Volkssturm) 이라고 하는 새로운 민병대에 차출되었다. 이 민병대는 연합군과의 마지막 방어 전투에서 정규군에 합류했다. 

장비와 훈련이 부족한 수천 명의 청년들이 패배가 눈앞에 보이는 데도 불구하고 독일 전쟁을 위해 싸웠고 죽었다.

종전 후

나치당과 마찬가지로 히틀러 청소년단과 독일 소녀 연맹은 종전 후 불법 단체가 되었다. 그러나 그 무렵에는 이미 수백만 명의 청소년과 청년들이 히틀러 청소년단 단체의 일원으로서 성장기를 보낸 시기였다. 따라서 이러한 조직은 20 세기 독일 사회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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