즈덴카 포퍼(Zdenka Popper)
출생: 1909년 9월 16일
체코슬로바키아, 콜리넥
즈덴카는 독일 국경 인근의 보헤미안 마을 남서부에 있는 콜리넥(Kolinec)의 유태인 집안에서 태어난 4명의 자녀 중 하나였다. 그녀의 아버지는 농부이자 목재 및 곡물 상인이었다. 보헤미안 산맥의 산기슭에 위치한 콜리넥은 구불구불한 언덕으로 둘러 싸여 있었다. 즈덴카는 근처 마을인 클라토비(Klatovy)에 있는 비즈니스 스쿨에 다녔는데, 1927년 삼촌과 함께 프라하(Prague)로 이사했다.
1933-39: 1932년 독일의 반유태주의가 꿈틀거리는 것에 대해 어머니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지금도 기억한다. 어머니는 라디오 방송을 통해 독일에 대한 소식을 들은 후 "유태인에 대한 끔찍한 무언가가 벌어질 것 같다"고 말했다. 이에 동생과 나는 "체코슬로바키아에서는 민주주의가 있기 때문에 결코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1938년 가을, 독일이 주데텐란드(Sudetenland) 지방을 합병하도록 서부 강대국들이 허용한 것에 이어, 1938년 3월 15일, 독일이 보헤미아(Bohemia)를 점령했다.
1940-44: 1942년, 나는 테레지엔슈타트(Theresienstadt)로 이송되었는데, 이곳은 나치가 유태인에 대한 "인도적인" 대우를 외부에 선전하기 위해 이용한 나치 "모델 게토"였다. 한번은 독일 언론사 촬영진이 게토에 왔는데 내가 그 앞으로 가자 나를 옆으로 밀쳐버렦다; 그들은 독일인 생각에 전형적인 유태인들의 모습인 촌스럽고 큰 코를 가진 사람들만 찍었다. 1944년 나치는 적십자사가 게토를 조사하도록 허용했다. 이들이 도착하기 전에, 나치는 게토를 미화하도록 명령했다. 가짜 공원과 학교가 건립되었다. 촬영진은 게토의 "아름다운 모습"만 카메라에 담았다.
1944년, 즈덴카는 외데란(Oederan) 수용소로 이송되었는데, 그곳에서 군수품 공장에서 일했다. 오데란의 수감자들은 나중에 테레지엔슈타트로 행진하고 1945년 5월에 그 곳에서 해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