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마(Frima)의 가족이 게토에 수용되어 있는 동안, 나치는 그녀의 아버지를 통역사로 썼다. 그는 나중에 사망하였다. 프리마와 어머니 그리고 여동생은 유태인이 아닌 것으로 위장하여 독일의 특수 이동 집단 학살 부대로부터 탈출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나중에 발각되어 수감되었다. 그녀의 어머니는 다시 탈출할 방법을 강구하였다. 프리마의 어머니와 여동생은 루마니아로 은밀하게 탈출하였으나, 프리마는 나중에 어머니가 그녀를 탈출시킬 방도를 마련할 때까지 안전한 곳을 찾아 이리 저리 떠돌았다. 세 모녀는 루마니아에서 다시 만나 해방을 맞았다.
어느 날 아침 일찍, 우리는 누군가가 문과 창문을 두드리며 “나와라, 나와라, 나와라”하고 고함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우리는 서둘러 옷을 입고 집 밖으로 나왔습니다. 음, 게슈타포가 거기 있었습니다…음…그들은 우리들에게 어딘가로 가라고 명령했습니다. 음…어머니는 제게 당시 제가 가지고 있던, 음, 예쁜 토끼털 코트를 입혀주었습니다. 토끼털 코트랑 모자요. 그리고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따라 나섰습니다. 그들은 우리를 큰 건물로 데려갔습니다. 그것은 무슨 공장 건물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음, 그들은 우리에게 옷을 벗으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장신구를 비롯한 모든 것들을 전부 벗었습니다…지니고 있던 값나가는 것까지 모두 말이죠. 그들은…그들은 우리에게 옷을 벗으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모두 옷을 벗었습니다. 여자들은 속옷만 남기고 모두 벗었고 남자들도 팬티만 입고 전부 벗엇습니다. 우리 어머니는 금 귀고리를 빼느라 좀 느렸는데, 게슈타포가 음, 엄마를 총 손잡이로 때렸습니다. 그래서 음, 어머니는 바닥에 쓰러졌습니다. 우리는 어머니를 일으켜드렸습니다. 그리고 음, 우리 모두는…거기에는 수백 명의 유태인들이 있었습니다…우리는 모두 옷을 벗고 밖에서 줄을 섰습니다. 그날은 흐린 날씨였습니다. 아주 흐렸죠. 그리고 아주 가는 이슬비가 내리고 있었습니다. 모든 여자들은 아무 것도 입지 않은 것에 무척 부끄러워서…손으로 가슴을 가려야 했습니다. 그리고..음…그들은 우리를 그룹으로 나누었습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따라서 길을 걸어갔습니다. 우리가 어떤 거리를 걸어 갈 때, 몇몇 우크라이나 사람들이 우리를 격려했습니다. 박수를 치고 격려를 했습니다. 우리는 그 도시를 나올 때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걷기만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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