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린(Irene)과 그녀의 쌍둥이 형제 르네(Rene)는 르네이트(Renate)와 르네 구트만(Rene Guttmann)사이에서 태어났다. 쌍둥이가 태어난 직후, 가족은 프라하로 이사하여 1939년, 독일이 보헤미아와 모라비아 지방을 점령할 때까지 그 곳에 거주하였다. 수 개월 후, 제복을 입은 독일인들이 그들의 아버지를 체포해 갔다. 수십 년 후, 아이린과 르네는 아버지가 1941년 12월, 아우슈비츠에서 살해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이린과 르네 그리고 어머니는 테레지엔슈타트 게토로 이송되었다가 나중에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이송되었다. 아우슈비츠에서 쌍둥이들은 분리되어 의학 실험의 대상이 되었다. 아이린과 르네는 아우슈비츠가 해방된 이후에도 한동안 따로 떨어져 있었다. 아동 구조 단체는 1947년, 아이린을 미국으로 데려왔다. 1950년, 아이린은 미국에서 르네를 다시 만났다.
저는 물론, 음, 불행하게도 많은 기억들이 음, 병원이나 음, 의사 진료실이 대부분입니다. 그러니까, 저는 대부분의 시간을 음, 거기서 지낸 것 같아요. 그리고 병원에서 지낸 시간들은 정말 싫었습니다. 그리고 음, 한번은 제가 의사 진료실에 갔는데 피를 뽑았어요. 그것은 정말 아팠어요. 왜냐하면 피를 뽑은 부위가 제 목 왼쪽이었거든요. 그건 정말 이상한 기억이었어요. 또 그들이 제 손가락에서 피를 뽑던 것도 기억납니다. 그건 그렇게 아프지는 않았지요. 또 기억나는데 저는 음, 아주 오랫동안 가만히 앉아 있고 무슨 측정 같은 것을 했죠. 몸무게도 재고 X-레이도 찍었어요. X-레이, X-레이도…기억납니다. 음…그리고 주사 맞은 것도요. 주사 맞은 기억도 납니다. 주사를 맞고 나면 늘 앓곤 했죠. 왜냐하면 그 때 저는, 저는 이 병원에 있었거든요. 그리고 열이 높았던 것도 기억납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들이 제 체온에 관해서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음, 저는 정말 의사를 싫어하게 되었어요. 저는, 저는, 무서웠지요. 저는, 전 정말 의사를 너무 무서워했어요. 아직도 그렇습니다. 그들은 제게는 악몽이어요. 병원은 더 말할 것도 없고요. 아픈 것은 딱 질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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