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웩 싸바손 (Lewek Szabasson)
출생: 1914년 3월 10일
폴란드, 코지에니체
르웩과 다섯 형제 자매들은 폴란드 중동부에 위치하고 있던 자작나무 숲이 무성한 코지에니체 마을의 독실한 유태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르웩의 아버지는 제재소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르웩과 형제들은 장성한 후에 아버지를 도와서 가업을 이어갔다.
1933-39: 나는 팔레스타인으로 (알리야) 이민가서 농업을 하고 싶어서 15세가 되었을 때 코지에니체 근처의 농업 학교를 다녔다. 그러나 1933년 독일에서 나치가 세력을 얻은 후에 독일의 유태인 청년들에게 팔레스타인으로의 이주 우선권이 주어졌다. 나에게는 떠날 기회가 주어지지 않을것을 알았기에 나는 코지에니체로 돌아왔는데, 1939년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자 거기서 옴짝달삭 할 수 없게 되었다.
1940-44: 1939년 말에 독일군이 코지에니체에 게토를 세웠고 내가 26세가 되던 1940년에 나는 폴란드와 독일에 있던 강제 노동 수용소로 이송되었다. 알라크 강제 노동 수용소에 있었을 때 나중에 먹으려고 배급받은 빵을 조금씩 모아놓던 친구를 나는 기억한다. 그는 그렇게 계속 빵을 모아 놓더니 결국 몸이 약해져서 전혀 먹지 못하다가 죽고 말았다.
르웩은 200명의 대가족이라고 불릴 수 있는 사람들 중에서 살아 남은 몇몇 안되는 이들 중 하나였다. 1949년 그는 미국으로 이주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