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언

아브라함 봄바(Abraham Bomba)

아브라함(Abraham)은 폴란드 체스토코바에서 성장하여 이발사가 되었다. 1942년, 그와 그의 가족은 체스토코바 게토로부터 트레블링카 집단 학살 수용소로 이송되었다. 트레블링카에서 아브라함은 강제 노동에 차출되었다. 그는 가스실로 들어가기 전 여성들의 머리를 삭발하는 일과 도착한 수송자들의 옷가지를 분류하는 일을 해야 했다. 1943년, 아브라함은 수용소를 탈출하여 체스토코바로 돌아갔다. 1943년 6월부터 1945년에 소련군에 의해 해방되기 전까지 그는 강제 노동 수용소에서 일하였다.

녹취

그리고 이제는 말하고 싶습니다. 말하고 싶습니다…가스실에 대해서요. 저는, 그들은 제게 이미 이일에 대해 물었습니다. 가스실은 이렇게 생겼습니다. 아주 단순합니다. 전부 콘크리트로 되어 있죠. 창문은 없었습니다. 그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 옆에 천정에는 줄이 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물이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문은 둘이었습니다. 철문이었죠. 한 쪽에 하나 다른 쪽에 하나가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한 쪽의 문을…통해서 들어가서 다른 쪽으로 나오는 것입니다. 저의 경우에는 그 안에서 이발을 하는 것입니다. 가스실이 가득차면, 그 크기는…한 18 곱하기 18, 아니 18 곱하기 17, 잘 모르겠습니다. 한 이 방 정도의 크기입니다. 정확하게 얼마나 큰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들은 거기에 될 수 있는 대로 많은 사람들을 밀어 넣었습니다. 장소가 비좁은 관계로 사람들은 손을 내리고 있으면 안되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손을 올리면 서로 간의 공간이 좀더 생기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 머리 위로 한 2, 3, 4살의 어린이들을 던져 넣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나왔습니다. 그 전부의 과정은 한 5분에서 7분 정도 밖에 소요되지 않습니다. 그들이 들어갔던 반대편의 문이 열리면…거기에는…트레블링카 2번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의 일은 죽은 사람들을 처리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시체를 꺼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미 죽었지만 어떤 사람들은 아직 살아있었습니다. 일하는 사람들은 그들을 구덩이로 끌고 가서 던진 다음 흙을 덮었습니다. 아주 큰 구덩이였죠. 그들은 그 구덩이를 덮었습니다. 그게 트레블링카의 시작이었습니다.


  • US Holocaust Memorial Museum Colle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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