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ustration from an antisemitic children's primer.

반유대주의(Antisemitism): 개론

반유대주의는 유대인에 대한 편견이나 증오이다. 이러한 증오는 홀로코스트의 근간이 되었다. 하지만 반유대주의는 홀로코스트에서 시작하거나 홀로코스트에서 끝난 것이 아니었다. 반유대주의는 수천 년 동안 존재해 왔다. 이는 종종 유대인에 대한 조직적인 차별과 박해의 형태로 나타나기도 했다. 반유대주의는 유대인에 대한 심각하고 치명적인 폭력으로, 반복적으로 이어졌다.

중요 사실

  • 1

    반유대주의는 역사적, 사회적, 문화적 뿌리가 깊은 혐오스러운 신념과 사상의 조합이다. 수 세기에 걸쳐 기독교는 유대인이 항상 소수 집단이었던 유럽에서 반유대주의의 발전과 확산에 중심적인 역할을 했다. 

  • 2

    오늘날 반유대주의 사상과 고정관념은 다양한 배경과 종교를 가진 사람들뿐만 아니라 정치적 입장과 관계없이 모든 사람에게 퍼져 있다.

  • 3

    반유대주의는 종종 고정관념과 비유에 기반한 희생양 만들기와 음모론의 형태를 띤다. 이러한 이론은 유대인을 사회나 심지어 세상에 위험한 존재로 잘못 묘사하고 있다. 

Nazi propaganda often portrayed Jews as engaged in a conspiracy to provoke war.

나치의 선전은 종종 유태인을 전쟁을 일으키는 음모론의 주인공으로 묘사하곤 하였다. 이 그림에는 영국, 미국 그리고 소련 국기 뒤에서 연합국을 조정하는 음모를 꾸미는 전형적인 유태인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자막에는 “적국의 배후에는 유태인이 있다.”라고 쓰여 있다. 시르카, 1942년.

Credits:
  • US Holocaust Memorial Museum, courtesy of Helmut Eschwege

반유대주의는 유대인에 대한 편견이나 증오이다. 이는 편견과 인종차별의 한 형태이다. 수 세기 동안 반유대주의자들은 반유대주의적 비유, 고정관념, 음모론을 퍼뜨리며 유대인을 악마화하고 비인간화해 왔다.

반유대주의는 유대인과 유대교에 대한 혐오스러운 신념과 사상의 조합이다. 이는 오래되고 널리 퍼진 편견에 근거한 것이다. 그러나 "반유대주의"라는 단어는 훨씬 더 새로운 개념이다. 1800년대 후반에 독일어로 "Antisemitismus"라는 단어가 만들어졌다. 영어에서 반유대주의는 "anti-semitism", "anti-Semitism" 또는 "anti semitism"으로 표기되기도 한다.

반유대주의는 홀로코스트의 원인이었다. 홀로코스트(Holocaust, 1933-1945)는 나치 독일과 동맹국 및 협력자들이 국가의 지원 아래에 600만 유럽의 유대인들을 조직적으로 박해하고 살해한 사건이었다. 나치는 수 세기에 걸친 반유대주의적 편견과 증오를 바탕으로 사람들을 선동하여 집단학살을 자행했다. 

하지만 반유대주의는 홀로코스트에서 시작하거나 홀로코스트에서 끝난 것이 아니었다. 수 세기 동안 다양한 종교, 사회경제적 지위, 정치적 견해, 국가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반유대주의적 편견과 신념에 근거하여 표현하거나 행동해 왔다. 반유대주의는 유대인에 대한 차별과 폭력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유럽에서 유대인에 대한 편견과 증오는 고대와 초기 기독교로 거슬러 올라간다. 수 세기 동안 유대인은 많은 유럽 왕국, 제국, 국가에서 소수 민족이었으며 박해를 받기도 했다. 유대인에 대한 편견은 중세(500~1400년경), 근대 초기(1400~1789년경), 많은 국가가 근대화되고 세속화되기 시작한 18~19세기(1700~1900년)에 유럽인의 삶과 사고방식에 깊숙이 자리 잡았다. 20세기 초까지 독일과 다른 유럽 사회에서는 많은 반유대주의적 고정관념, 오해, 신화가 확립되어 널리 받아들여졌다. 이런 체계적인 증오로 인해 홀로코스트(1933~1945년)가 가능해졌다. 

반유대주의의 기독교적 근간

반유대주의는 고대의 반유대주의와 초기 기독교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유대인에게 대한 많은 고정관념과 음모론은 초기 및 중세 기독교의 가르침과 관습에서 기원을 찾을 수 있다. 초기 기독교인들은 기독교가 유대교를 대체했으며 유대인은 더 이상 하나님의 선택 받은 민족이 아니라고 가르쳤다. 그들은 유대인들이 예수를 메시아로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에 고집스럽고 진리를 바라보는 눈이 멀었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사상 때문에 기독교인들은 수 세기 동안 유대인을 향해 불신과 적대감을 느끼게 되었다.

반유대주의적 편견이 가장 일찍 표출되게 된 다른 기독교적 신념이나 주제는 다음과 같다.  

  • 유대인들이 예수를 죽였다는 거짓 비난, 이는 기독교의 공식적인 교육을 통해 강화;
  • 예수를 배신한 가룟 유다를 상징으로 삼아 유대인의 기만적이고 탐욕스러운 본질 주장; 
  • 유대인이 악마와 일하거나 악마 그 자체라는 기독교의 비난; 그리고 
  • 유대인이 기독교 어린이들 "의식적 살해"한다는 거짓 비난, 즉 "피의 중상"(Blood Libel)이라는 거짓

이러한 생각은 대부분의 기독교 교회와 교단에서 더 이상 적극적으로 홍보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것은 수 세기 동안 유대인에 대한 태도에 영향을 미쳤다. 따라서 기독교와 유대인에 대한 기독교 사상은 반유대주의의 토대를 형성했다. 

반유대주의는 유럽과 전 세계 기독교의 영향을 받은 사회, 심지어 유대인이 거의 또는 전혀 살지 않는 곳에서도 만연했다. 오늘날 반유대주의는 대부분 기독교가 아닌 사회에서도 널리 퍼져 있다. 

세속적(비종교적) 반유대주의

반유대주의에는 유대인에 대한 세속적(비종교적) 편견도 포함된다. 유럽에서는 수 세기에 걸쳐 유대인에 대한 부정적인 경제적, 민족주의적, 인종적 사고와 믿음이 발전했다. 이러한 세속적인 편견과 혐오는 기독교인이 대다수를 차지하는 유럽 사회에서 유대인이 소수 집단이라는 상황에서 비롯된 것이다. 유대인에 대한 혐오스러운 종교적, 세속적 사상과 믿음이 모여 반유대주의를 구성한다. 

경제적 반유대주의  

경제적 반유대주의는 유대인이 본질적으로 탐욕스럽고 인색하며 돈을 잘 다룬다는 해롭고 모욕적인 고정관념에 기반한다. 반유대주의적 구절인 "Jew down"("흥정하다" 또는 "사기를 치다"라는 뜻)은 이러한 편견을 현대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또 다른 예로는 대부분의 유대인이 이러한 직업에 일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유대인을 대부업, 은행업 또는 금융업과 잘못 연관 짓는 것이다. 

경제적 반유대주의는 중세와 근대 초기 유럽에 역사적 뿌리를 두고 있다. 수 세기 동안 많은 유럽 당국은 유대인이 토지를 소유하거나 농업에 종사하거나 대부분의 수공업 또는 무역업에 종사하는 것을 금지했다. 이러한 제한은 일반적으로 종교적 편견에서 비롯된 것이다. 많은 유대인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상업, 고리대금업, 환전업에 종사하는 것 외에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대부분의 유대인에게 있어서 상업 활동은 행상과 같은 소규모 사업이었다. 많은 유대인이 가난하게 살았다. 그러나 극히 일부의 경우에 유대인 가문이 법원이나 왕국에 돈을 빌려줌으로써 유명해지고 부유해졌다. 이런 예외적인 상황 때문에 유대인의 부에 대한 왜곡과 거짓말이 생겨났다. 이러한 거짓말은 오래된 종교적 편견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 결과 유대인들이 이러한 허황한 부를 이용해 권력을 행사한다는 세속적인 음모론이 생겨났다. 

19세기에 일부 정치인들은 경제적 반유대주의 사상을 정치 이론에 통합하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그들은 좌익과 우익 자본주의 비판론에 이러한 사상을 포함했다. 반유대주의 정치 이론가들은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비롯한 경제 시스템들을 유대인의 책임으로 돌렸다. 이러한 관행은 대부분의 자본가, 산업가, 극소수의 부유층이 유대인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21세기에도 계속되고 있다. 

민족주의적 반유대주의 

민족주의적 반유대주의는 유대인이 의심스러운 "외부인"이거나 충성심 또는 애국심이 없는 시민이라는 해롭고 모욕적인 고정관념에 뿌리를 두고 있다. 민족주의적 반유대주의는 유대인이 위험하고 의심스러운 국제적 연계를 두고 있다고 주장한다. 민족주의적 반유대주의자들은 흔히 유대인을 지칭하는 은어로 "코스모폴리탄"(Cosmopolitan) 또는 "글로벌리스트"(Globalist)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유대인에 대한 민족주의적 적대감과 배제는 18세기 말과 19세기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시기는 유럽에서 민족주의가 강력한 사상으로 부상한 시기이다. 많은 민족주의 지식인과 작가들은 공통된 역사, 언어, 종교, 문화를 기반으로 민족을 정의했다. 그들은 유대인이 국가의 구성원이 될 수 있는지 의문을 제기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러한 새로운 생각과 오래된 편견을 바탕으로 많은 민족주의자들은 유대인을 "외국인"으로 분류했다 

19세기 후반에는 종족 민족주의라는 급진적인 형태의 민족주의가 인기를 얻었다. 종족 민족주의는 유전과 민족을 기반으로 국가의 구성원을 정의했다. 많은 종족 민족주의 단체가 노골적이고 공개적으로 반유대주의를 표명했다. 그들은 유대인이 국가의 구성원이 될 수 있다고 믿지 않았다. 민족주의 정치 운동은 유대인을 경제, 사회, 정치 생활에서 공식적으로 배제할 것을 요구했다. 일부는 유대인의 강제 이주를 옹호하기도 했다. 민족주의적 반유대주의 정치 운동과 단체는 20세기와 21세기에도 계속 성장했다. 이 중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이 나치당이었다. 

인종적 반유대주의

Nazi racial charts. Germany, between 1935 and 1945.

나치의 인종 도표. 독일, 1935년부터 1945년 사이.

Credits:
  • Bayerische Staatsbibliothek München

인종적 반유대주의는 유대인이 생물학적으로 분리되고, 열등하고, 심지어 기생적인 인종이라는 차별적이고 잘못된 생각에 기반을 두고 있다. 이것은 나치 이데올로기의 핵심 요소였다. 인종적 반유대주의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반유대주의의 중요한 요소로 남아 있다. 다양한 배경과 정치적 신념을 가진 사람들이 유대인의 인종적 정체성에 대해 잘못된 주장을 펼치고 있다. 

인종적 반유대주의는 19세기 후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시기는 유럽, 미국 등에서 인종, 우생학, 사회 다윈주의에 대한 과학적 이론이 인기를 얻던 시기이다. 반유대주의자들은 이러한 이론을 이용해 반유대주의적 증오심을 과학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것처럼 묘사했다. DNA와 인간 게놈에 대한 연구는 이러한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한다. 어떤 종류의 뚜렷한 생물학적 인종이 존재한다는 과학적 증거는 없다. 

반유대주의 희생양 만들기와 음모론 

반유대주의자들은 종종 희생양과 음모론을 이용해 유대인을 사회나 세계에 위험한 존재로 묘사한다. 유대인에 대한 이런 악마화는 초기 기독교부터 시작되었다. 반유대주의적 희생양 만들기와 음모론은 유대인에 대한 오랜 경제적, 민족주의적, 인종주의적 사상에 기반을 두고 있는 경우가 많다.

역사적으로 반유대주의자들은 사회의 여러 가지 광범위한 문제에 대해 유대인을 잘못 비난해 온 경우가 많았다. 그들은 유대인이나 유대인 민족을 희생양으로 삼는다. 사실과 이치에 맞지 않게 반유대주의자들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유대인을 잘못 비난해 왔다. 

  • 흑사병(페스트)과 같은 전염병 및 유행병의 발병
  • 제1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의 패배와 같은 군사적 손실의 원인
  • 공산주의 및 기타 급진적 정치 운동의 선동
  • 유럽 제국주의, 식민주의, 노예무역 조장
  • 대공황과 같은 금융 위기 유발

이러한 비난은 모두 사실이 아니다. 

반유대주의 음모론자들은 세계의 주요 사건을 유대인 비밀 집단이 그림자처럼 수행한 음모의 결과로 설명하려고 한다. 그들은 유대인을 사악한 "꼭두각시 조정인"으로 묘사한다.

가장 악명 높은 반유대주의 음모론은 1900년경 "시온 장로 의정서"(Protocols of the Elders of Zion)라는 반유대주의 간행물에서 비롯되었다. 이러한 음모론에는 유대인 집단이 언론, 할리우드, 심지어 전 세계를 비밀리에 통제하고 있다는 날조된 비난도 포함된다. 

반유대주의적 희생양 만들기와 음모론은 주요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격변이나 불확실성이 있을 때 다시 등장하고 변형된다. 나치와 같은 반유대주의 정치 집단은 추종자를 확보하기 위해 이러한 거짓말을 자주 이용하고, 각색하고, 퍼뜨렸다.

실질적 반유대주의 

수 세기 동안 반유대주의는 비유대인 사회와 개인이 유대인을 대하는 방식에 영향을 미쳤다. 정부, 종교 단체, 사교 클럽, 학교, 대학, 기업 등은 유대인을 차별하고 유대인의 삶을 제한하는 법률, 관행 또는 정책을 채택했다. 또한 개인들은 유대인을 비열한 비방, 잔인한 풍자, 폭력의 대상으로 삼았다. 

공식적인 반유대주의 정책 및 규제

고대부터 유럽과 그 밖의 여러 국가에서는 유대인에 대한 규제를 시행해 왔다. 이러한 규제는 법률, 법령, 종교 또는 정부 기관의 공식 정책을 통해 시행되었다. 종교적 또는 세속적 당국과 정부가 유대인을 표적으로 삼았던 가장 일반적인 방법은 다음과 같다. 

  • 영토에서 유대인 추방(예: 1290년 영국, 1394년 프랑스, 1492년 스페인)
  • 모자, 배지 또는 다윗의 별을 포함한 상징을 사용하여 유대인을 눈에 뜨이게 표시하는 행위
  • 유대인의 토지 소유 금지
  • 유대인 및 유대인 공동체에 추가 세금 부과 
  • 1920년 헝가리의 정원 제한법(Numerus Clausus)과 같은 유대인에게 직업이나 교육 기회를 중대한 제한하는 법안 통과
  • 죽음의 위협으로 유대인에게 기독교나 이슬람으로 개종하도록 강요 
  • 유대인의 군 복무 또는 공무원 채용 금지
  • 유대인이 거주할 수 있는 지역을 제한하는 명령(예: 러시아 제국이 세운 게토 또는 정착촌) 

유대인에 대한 사회적 차별

수 세기 동안 많은 기관, 단체, 기업에서 자발적으로 유대인을 차별했다. 이러한 유형의 차별은 많은 사회에서 반유대주의가 체계적으로 자리 잡았음을 반영했다. 유대인에 대한 일반적인 형태의 사회적 차별은 다음과 같다. 

  • 사교 클럽 또는 전문가 협회(예: 길드, 19세기 독일 학생 친목회 또는 20세기 미국 컨트리클럽)에서 유대인 가입 금지
  • 특정 지역에서 유대인의 부동산 구매 금지 
  • 유대인 학생의 대학 진학을 금지하거나 할당제 따라 유대인 학생 수 제한 
  • 유대인 직원 채용 거부 
  • 1930년대 후반 폴란드의 극우 불매운동과 같은 유대인 소유 기업 불매운동
  • 언론과 미디어에서 반유대주의적 거짓말과 음모론 확산

대인 관계에서 반유대주의적 표현

수 세기 동안 반유대주의적 고정관념과 편견은 유대인과 비유대인 간의 상호 작용에 영향을 미쳤다. 반유대주의 개인이나 단체는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유대인을 표적으로 삼았다. 

  • 반유대주의적 고정관념과 음모론에 기초한 비방적 표현을 사용하거나 농담하기 
  • 유대인을 코가 굽었거나 다른 기형적인 이목구비를 가지고 있다고 묘사하거나 희화화하기 
  • 유대인을 성범죄자나 질병을 옮기는 존재로 묘사하기
  • 예술이나 다른 그림에서 유대인을 돼지, 해충, 문어 또는 기타 동물로 묘사하여 비인간적으로 만들기
  • 학대의 대상으로 삼기 위해 사람이나 사상 자체를 유대인이라고 분류하기 
  • 회당, 묘지, 학교 또는 기타 유대인 종교 또는 공동 공간을 파괴, 방화 같은 방법으로 모독하기 
  •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개인을 구타, 공격, 심지어 살해하기

오늘날 반유대주의 정책과 제약은 덜 흔하지만, 거리, 정치 담론, 교회, 모스크, 캠퍼스 및 교실, 언론, 소셜 미디어 및 라디오에서 여전히 반유대주의적 편견이 표현되고 있다. 

유대인을 대상으로 한 집단 폭력

반유대주의는 종종 유대인을 대상으로 한 집단 폭력으로 이어지곤 했다. 반유대주의 희생양 만들기와 음모론은 종종 반유대주의자들이 유대인을 폭력의 대상으로 삼도록 동기를 부여해 왔다. 유대인은 유럽에서 소수 집단이었기 때문에 잔혹한 공격에 취약할 수밖에 없었다.

홀로코스트 이전에 유대인을 대상으로 한 집단 폭력의 가장 악명 높은 사례는 다음과 같다. 

  • 중세 십자군 전쟁 당시 기독교 군인들이 유대인 공동체 전체를 학살한 사건
  • 스페인 종교재판(1478~1834)에서 스페인의 가톨릭 관리들이 유대인을 고문하고 처형한 사건 
  • 일반적으로 기독교 부활절 및 유대인 유월절과 관련된 유혈 명예훼손 혐의에 대응하여 지역 폭도들이 유럽 전역에서 유대인 공동체에 저지른 폭동 사건
  •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동유럽에서 군인, 경찰, 지방 폭도들이 저지른 포그롬(다수 치명적이었던 반유대인 폭동) 

홀로코스트(1933~1945년) 당시 반유대주의적 대량 폭력과 살인의 규모는 그 자체로 하나의 범주에 속했다. 나치와 동맹국 및 협력자들은 국가가 조직적으로 후원한 집단학살을 통해 600만 명의 유대인을 살해했다. 나치는 수 세기에 걸친 반유대주의적 편견과 증오를 바탕으로 사람들을 선동하여 집단학살을 자행했다.  

하지만 홀로코스트가 반유대주의적 집단 폭력의 종말을 고한 것은 아니었다. 반유대주의적 폭력은 전 세계 유대인들과 유대인 단체에 여전히 위협이 되고 있다.  

A woman mourns by the coffins of Jews who died in the Kielce pogrom.

키엘체 대박해(포그롬, Pogrom)에서 사망한 유태인의 관 옆에서 슬퍼하는 여인. 폴란드, 1946년 7월 6일.

Credits:
  • US Holocaust Memorial Museum

반유대주의의 형태로 홀로코스트 왜곡과 부정  

홀로코스트 부정과 왜곡은 반유대주의의 새로운 형태이다. 

  • 홀로코스트 부정은 나치가 저지른 유럽 유대인들의 집단학살에 대해 수립한 사실을 눈가림하려는 노력이다.
  • 홀로코스트 왜곡은 홀로코스트에 대한 확정 사실을 잘못 표현하는 모든 진술이다. 

홀로코스트 부정과 왜곡은 오래된 반유대주의적 고정관념을 이용하여 새롭게 변형한다. 이러한 비이성적인 이론을 퍼뜨리는 사람들은 홀로코스트가 유대인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만들어 내거나 과장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20세기 후반과 21세기에 일부 반유대주의자들은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홀로코스트의 기록된 역사를 오용하거나 악용했다. 

  • 나치 상징(특히 스와스티카)을 사용하여 유대인을 협박하거나 공포에 떨게 하는 행위 
  • 가스실이나 소각장에 대한 언급으로 유대인을 협박하는 행위
  • 이스라엘 국가와 나치 독일을 서로 비유하는 행위
  • 홀로코스트 당시 기록된 범죄를 왜곡, 축소, 경시하는 비교 행위 

다면적이고 지속적인 증오

반유대주의는 역사적, 사회적, 문화적 뿌리가 깊은 증오 적인 신념과 사상의 집합체이다. 오늘날 반유대주의 사상과 고정관념은 다양한 종교적, 민족적, 사회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과 좌파와 우파를 포함한 정치적 입장을 가진 사람들 전반에 걸쳐 존재한다. 이들은 혐오스러운 반유대주의적 비유, 고정관념, 음모론을 동원하여 이데올로기를 확산시킨다. 이를 통해 유대인을 악마화하고 비인간화한다. 

반유대주의는 종종 비방, 희생양 삼기, 모욕 등 수사적 표현으로 시작된다. 하지만 역사는 반유대주의가 더 광범위한 차별, 비인간화, 집단 폭력, 집단학살로 확대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Footnotes

  1. Footnote reference1.

    이를 "초월주의" 또는 "대체신학"이라고 한다.

  2. Footnote reference2.

    수 세기 동안 많은 기독교인은 유대인들이 예수를 죽임으로써 신살해를 저질렀다고 믿었다. 사실 예수는 로마 당국에 의해 죽었다. 다양한 기독교 전통의 지도자들은 공식적인 교육에서 이러한 잘못된 믿음을 강화했다. 20세기 후반이 되어서야 일부 기독교 교회에서 신살해 혐의가 거짓이라고 비난하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로마 가톨릭은 1965년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이러한 거짓말을 부인했다.

  3. Footnote reference3.

    많은 기독교가 가졌던 반유대주의적 고정관념은 예수와 같은 유대인이었던 1세기 가룟 유다의 인물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 기독교 성경에서 유다는 은 30냥을 받고 예수를 배신한다. 기독교가 지배적인 유럽에서 이러한 묘사는 유다로 상징되는 유대인에 대한 혐오스러운 고정관념으로 변질되어 배신자인 유대인을 탐욕스러운 존재로 여기게 되었다.

  4. Footnote reference4.

    중세 말기와 근대 초기에 많은 기독교인들은 유대인이 악마와 협력하거나 심지어 악마 그 자체라고 비난했다. 이러한 주장은 기독교 논문, 신학, 도덕 연극, 민담, 예술에서 받아들여졌다. 특히 1517년 개신교 종교개혁을 일으킨 신학자 마르틴 루터는 1543년 유대인에 대한 공격적인 논문을 썼다. 종교개혁 이후에도 유대인들이 기독교로 개종하지 않는 것에 분노한 그는 유대인을 악마의 후예라고 비난했다. 기독교 예술가들은 종종 유대인을 악마나 뿔, 발톱, 뾰족한 이빨, 발굽이 있는 동물과 같은 모습으로 묘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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