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아스 그로스만(Elias (Elya) Grosmann)

엘리아스 그로스만(Elias (Elya) Grosmann)

출생: March 29, 1921

엘리아스(Elias)는 슬로바키아(Slovakia) 북동쪽 언덕 어느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의 가족은 독실한 유태인이었고 그는 가정에서 이디시어와 헝가리어를 함께 사용하며 성장 했다. 그의 아버지는 노점상을, 어머니는 작은 상점을 운영했다. 공립학교를 다니는것 이외에 엘리아스는 정식으로 유태교식 교육을 받고 메드질바보스(Medzilaborce)의 랍비 학교에 다녔다.

1933-39: 그 마을의 대부분이 유태인이었기 때문에 나치 독일군에 대해 염려하고 있었습니다. 1938년 3월 독일에 의해 오스트리아가 합병되었다는 소식은 우리를 더욱 긴장하게 하였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팔레스타인을 떠났지만 마을의 유태인 지도자들은 팔레스타인에 유태 국가를 건설하는 데 반대했습니다. 저도 이 마을에서 시온주의자를 옹호하는 한 사람이었습니다. 1939년 3월 독립 국가로 출범한 슬로바키아는 나치 독일의 동맹국으로 가입하고 반유태인 법을 수용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해 주시길 기도했습니다.

1940-44: 슬로바키아 정부는 우리 가족의 사업을 "아리안식"으로 바꾼다는 명목으로 우리의 생계를 모두 앗아갔습니다. 20세 생일을 맞은 저는 "유태교 부대"이라 불리는 스로바키아 강제 노동에 투입되었습니다. 급여는 다른 군인과 같았지만 총 대신 저는 삽을 들었습니다. 제가 맡은 일은 도로 공사였습니다. 일은 어려웠지만 SS가 포위하여 우리를 잡아갔던 1944년 10월 전까지는 적어도 안전했습니다.나흘 후 아우슈비츠에 도착한 저는 가스실이 아닌 노역에 투입되었습니다.

엘리아스는 1945년 1월 플로센뷔르그 수용소로 이송되어 1945년 5월 2일 미군에 의해 다하우 인근에서 결국 자유의 몸이 되었다. 1947년 그는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