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리자 레마직(Ilija Lemajic)

일리자 레마직(Ilija Lemajic)

출생: 1897

일리자(Ilija)는 유고슬라비아의 크로아티아 지방에 위치한 어느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모와 형제처럼 일리자도 세르비아 정교 신앙에 따라 세례를 받았다. 레마직 가족은 대부분 세르비인이 거주하고 있는 크로아티아의 한 지역에 살고 있었다. 일리자가 초등학교를 마치자 그의 가족은 두보박(Dubovac)이라는 마을로 이사했다. 그의 나이 30세가 되던 해, 그는 마을의 어느 처녀와 결혼하여 노브스카(Novska)로 건너가 직업을 가졌다.

1933-39: 제게는 아름다운 아내와 예쁜 두 딸이 있습니다. 저는 크로아티아 노브스카에서 유고슬라비아 정부를 위해 세무 관리 업무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로마 카톨릭이 대부분인 크로아티아 마을의 세르비아인으로써 ,세르비아 교회에 참석하기 위해서는 교회가 있는 다른 마을로 가야만 했습니다. 유고슬라비아의 알렉산더 대왕은 1934년에 살해되었습니다. 그는 세르비아인으로 근방의 많은 크로아티아인들이 세르비아인들이 사는 집 창문을 향해 돌을 던지며 그의 죽음을 축하했습니다.

1940-44: 독일군이 유고슬라비아를 침공했을 때 크로아티아계 파시스트[우스타제(Ustase)]들이 크로아티아에서 정권을 잡게 되었습니다. 새로운 정부는 저에게 그전처럼 그대로 일하고 싶으면 로마 카톨릭으로 개종하라고 지시했습니다. 이를 거절하자 1941년 7월 저는 해고되었습니다. 저와 제 가족은 오쿠카니(Okucani) 근방의 마을로 이사하고 그곳에서 간신히 일자리를 얻었습니다. 그러나 오쿠카니에서도 한 번은 독일군에게 또 한 번은 크로아티아계 파시스트들에게 체포되는 수모를 겪었습니다. 양쪽 모두 체포 후 저를 풀어주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크로아티아계 파시스트에게 다시 또 체포되었습니다. 나의 죄는 내가 세르비아인이라는 사실입니다.

1944년 9월 크로아티아계 파시스트들은 오쿠카니 인근에서 일리자의 목숨을 앗았다. 그의 나이 47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