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터 세제니악(Walter Szczeniak)

월터 세제니악(Walter Szczeniak)

출생: 1911년 2월 4일

Unknown

월터는 매사추세츠주 보스턴 인근 어느 마을의 폴란드 카톨릭 이민 1세의 8자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월터가 어렸을 때 그의 가족은 폴란드로 이사했으며 폴란드 북쪽 오스트로랭카(Ostroleka) 인근에 위치한 월터의 어머니가 물려받은 가족 농장을 경영하며 살고 있었다. 월터 아버지의 미국식 이름이 "스테트슨(Stetson)"이었기 때문에 월터의 이름도 미국 출생 신고서에는 "찰스 스테트슨(Charles Stetson)"으로 잘못 등록되어 있다.

1933-39: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아버지는 저를 바르샤바 대학으로 보냈고 1936년 그 대학에서 법학을 이수했습니다. 저는 바르샤바 법원에 수습으로 들어가 나중에 폴란드계 상원의원이 되는 것이 목표였습니다. 1939년 여름방학 내내 저는 바르샤바 내 모든 미국인들은 폴란드를 떠나라는 미 영사관의 명령을 무시했습니다. 한 달도 안되어 독일군이 오스트로랭카(Ostroleka)를 점거했습니다. 저는 폴란드 지하 단체에 가입했습니다.

1940-44: 1941년 지하 운동 단체로부터 미국으로 돌아가 나치가 하고 있는 일을 알리라는 권유를 받았지만 저는 슬로바키아에서 체포되어 아우슈비츠로 이송되었습니다. 형벌 단계에서 종신형이란 말은 사형이나 다름 없음을 알고 있었기에 저는 사령관에게 이동이 가능한지 물었습니다. 한마디로 그것은 도박이었습니다. 그가 기분이 좋으면 "가능"한 것이고 기분이 좋지 않으면 즉결 사형인 것입니다. 다행이었습니다. 부엌 잔일을 도울 수 있게 그가 선처를 베푼 것입니다. 그곳에서 저는 기력을 회복하고 가스실에 들어가는 위험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

월터는 나중에 철도 수리 부서로 재수감되었다. 1945년 5월 2일 그는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Salzburg) 인근에 주둔 중인 미군에 의해 자유의 몸이 되었고 1946년 미국으로 귀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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