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언

미소 (미하엘) 보겔(Miso (Michael) Vogel)

1939년, 슬로바크의 파시스트들은 미소(Miso)가 살고 있는 토폴캐니를 점령하였다. 1942년, 미소는 슬로바크가 운영하는 노바키 수용소로 수감되었다가 아우슈비츠로 이송되었다. 아우슈비츠에서 그는 그의 죄수 번호인 65,316을 나타내는 문신을 몸에 새겨야 했다. 이 일련 번호는 그의 앞에 이미 65,315명의 죄수가 있다는 뜻이었다. 그는 부나 노동지에서 강제 노동을 하였고, 나중에는 비르게나우의 “카나다(Kanada)”에 파견되어 도착하는 기차의 화물을 내리는 강제 노역을 하였다. 1944년 말, 수감자들은 독일의 다른 수용소들로 이송되었다. 미소는 랜스버그에서 출발한 죽음의 행군에서 탈출하여 미군에 의하여 구출되었다.

녹취

그래서 우리는 행진하면서 정문을 통과했는데, 그들은 우리에게 채찍을 휘두르고, 우리를 때렸습니다. 개들은 우리에게 달려들었죠. 우리는 아주 큰 벽돌 건물에 도착했습니다. 그들은 우리의 머리를 밀었죠….그 거대한 벽돌 건물에서요. 그리고 거기 있는 수감자들한테 SS 부대원들이 다음에 무엇을 해야 하는지 말했습니다. 그것은 테이블들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아주 긴 테이블이지요. 첫 번째 구역에서 우리는 탈의를 했습니다. 옷을 다 벗었습니다. 거기에는 우리 뒤로 벽걸이가 달려 있었습니다. 우리는 벗은 옷을 철사에 꿰어 벽걸이에 걸고 신발을 벗어서 바닥에 놓았습니다. 다음 테이블에는 이발사가 있었습니다. 수용소 이발사지요. 거기서 우리는 머리를 모두 밀고, 우리 몸에 있는 털을 전부 밀었습니다. 그들은 위생상 그렇게 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다음 테이블로 이동했는데 거기에서 문신을 했습니다. 거기서 왼팔에 문신을 새겼습니다. 거기서 한 사람이…더러운 알코올 솜 조각으로 팔을 문지르면…다른 사람이 바늘을 잉크에 찍어서 숫자를 새겼습니다. 제 번호는 65,316이었습니다. 이는 제 앞으로 이미 65,315명이 죄수 번호를 새겼다는 뜻이지요. 문신을 새긴 후…문신이 다 되고 나서, 그들은 우리에게 옷을 주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벗어 놓은 그 옷들을 다시 준 것은 아닙니다. 그들이 준 옷은 줄무늬의 갈색 모자, 자켓, 줄무늬 자켓, 줄무늬 바지 한 벌, 나막신 한 켤레, 그리고 셔츠였습니다. 양말이나 속옷은 전혀 받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구역에서, 그들이 유니폼을 줄 때, 그들은 우리에게 줄무늬 천 조각 두 장을 주었습니다. 그 천 조각은 아마 대략 6인치 길이에 폭은 약 1인치 반 정도 되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별…다윗왕의 별이었는데, 왼팔에 문신된 우리의 죄수 번호와 일치하는 번호가 새겨져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왼쪽 가슴과 바지의 오른쪽 다리 부분에 꿰매야 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물건은 우리가 받은 것 중 가장 소중한 물건인데, 그것은 바로 둥근 밥그릇이었습니다. 그 밥그릇은 우리의 생명줄이었습니다. 무엇보다도 그게 없으면 그나마 우리가 받던 빈약한 식량 배급이나마 받을 수 없었죠. 그리고 두 번째로, 화장실 시설은 거의 전무 하다시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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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US Holocaust Memorial Museum Colle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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