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린(Irene)과 그녀의 쌍둥이 르네(Rene)는 르네이트(Renate)와 르네 구트만(Rene Guttmann)사이에서 태어났다. 쌍둥이가 태어난 직후, 가족은 프라하로 이사하여 1939년, 독일이 보헤미아와 모라비아 지방을 점령할 때까지 그 곳에 거주하였다. 수 개월 후, 제복을 입은 독일인들이 그들의 아버지를 체포해 갔다. 수십 년 후, 아이린과 르네는 아버지가 1941년 12월, 아우슈비츠에서 살해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이린과 르네 그리고 어머니는 테레지엔슈타트 게토로 이송되었다가 나중에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이송되었다. 아우슈비츠에서 쌍둥이들은 분리되어 의학 실험의 대상이 되었다. 아이린과 르네는 아우슈비츠가 해방된 이후에도 한동안 서로 따로 떨어져 있었다. 아동 구조 단체는 1947년, 아이린을 미국으로 데려왔다. 1950년, 아이린은 미국에서 르네를 다시 만났다.
아이린: 그 다음에 기억나는 것은, 좀 있다가, 우리가 걸었다는 것입니다.-그것은 정말 악몽이었어요.-눈을 뚫고 우리, 제 어머니, 우리 어머니는 가방을 질질 끌다시피 하고, 저는 가방이 없었다는 게 기억납니다. 저는 우리가 가는 어디든지 가기가 싫었습니다. 또 엄마가 저를 확 끌어 당기던 것도 기억합니다. 마치, 마치, 아세요, 그냥 오라고요. 그래서 저는 엄마를-그리고 그게 제가 엄마가 있다는 걸 기억하는 거죠. 왜냐하면 제 기억으로는 그러니까, 엄마는 실제로는 저를 자기 쪽으로 오도록 하는 거죠, 마치…
르네: 제 생각에 저는 좀 말을 잘 들었나 봐요. 엄마가 그렇게 잡아당긴 기억은 안 나니까요. 하지만, 그날 밤은 기억납니다. 개들이 기억나요.
아이린: 네, 네, 거기엔 개들이 막 짖고 있었어요. 그리고 우리는 기차를 탔지요.
르네: 네, 기차를 탄 기억이 나요.
아이린: 네, 저도 그래요.
르네: 제 말은, 그게 음, 지금 돌아보면, 이제는 아는 거죠, 그게 실은 아우슈비츠로 가는 기차였던 것입니다. 하지만 음, 그 열기, 냄새, 만원이던 찻간, 그리고, 음, 그 열차 안의 음, 고통스러운 사투. 아세요. 들으셨죠. 그 사람들 그냥 죽었다는 것…
아이린: 그런 신음 소리들이 났어요…그리고…
르네: 신음소리, 제 말은, 그건 정말 무서웠어요.
아이린: 그리고 어린아이가 듣기에는 그건 정말 힘든 소리였죠. 글쎄요, 내 옆의 모든 사람들이 전부 그랬어요. 그리고 기억나는 것은 제가 그냥, 그냥 눕고 싶었다는 것입니다.
르네: 네, 맞아요. 왜 그랬는지 모르지만 우리는 누울 수도 없었죠.
아이린: 맞아요. 누울 자리가 없었어요…
르네: 누울 자리가 없었거나, 아니면 눕는 장소가 아니었을 거에요. 아니면 거기가 너무 더러웠든지 하여간 누울 만한 장소가 아니었어요.
아이린: 누울 수가 없었어요. 누울 자리가 없었어요… 그냥 처음 탔던 그 자세로 계속 있어야 했어요. 그런데…그래도 우리는 울지 않았죠.
르네: 맞아요.
아이린: 겁이 나서 못 울었던 거죠. 왠지 울면 안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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