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smissal letter

공무원의 역할

유대인과 다른 집단의 박해는 히틀러와 나치당 열성 당원부터 비롯된 결과가 아니었다. 많은 경우에, 나치 지도자들은 나치즘을 확신하지 않은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로부터 적극적인 도움이나 협력이 필요했다. 관료부터 판사에 이르기까지 공무원들은 유대인의 권리, 생계 및 재산을 박탈하기 위한 법률을 작성하고 시행했다.

1933년 나치가 권력을 장악했을 당시 대부분 독일 공무원은 보수적이고 민족주의적이며 권위주의적이었다. 정적들이 공직에서 숙청된 후 공무원들은 나치의 반공산주의와 바이마르 공화국에 향한 거부감에 공유했다. 그들은 나치 정권을 합법적으로 여겨 "법을 준수"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대부분은 근본적으로 반유대주의자는 아니었지만 유대인들이 "다르다"라거나 "너무 많은 영향력"을 갖추고 있다고 믿었다.

Jewish lawyers line up to apply for permission to appear before the Berlin courts.

베를린 법정에서 유태인 변호사들이 출석 허가를 받기 위해 줄을 서고 있다. 아리아인 법조문에 발표된 새로운 규정(유태인을 각종 국가적 사회적 행사에서 축출하기 위하여 1933년 4월에 제정된 일련의 법조항)은 오로지 35인만이 법정에 출석하도록 허락하였다. 독일, 베를린, 1933년 4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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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 정책을 시행하기 위해 다양한 기관에서 근무하는 공무원들은 정상적인 업무의 일환으로 1933년 이전에 독일 유대인들이 동등한 시민으로 누렸던 시민권을 단계적으로 박탈하는 수많은 법률과 법령 입안했다. 이러한 법에는, 예로 "유대인"이라는 용어를 정의하고, "유대인"과 "독일 혈통" 간의 결혼을 금지하고, 유대인을 공직 및 기타 직업에서 해고하도록 요구하고, "유대인 재산"에 차별적 세금을 부과하고, 은행 자금을 차단하고, 추방된 유대인의 재산을 국가에 귀속시키도록 하는 조치들이 있었다.

공무원들은 유전적 정신질환과 심신장애 진단을 받은 사람에 대한 불임시술을 의무화하는 법률을 제정했고, 광범위한 동성애 행위를 불법화한 형법 175항 개정안도 마련했다.

전시에 독일 외무부의 외교관은 나치 정권이 유대인을 추방하려는 국가의 지도자 및 관료들과 협상할 때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

독일 판사들도 다른 공무원의 보수적, 민족주의적, 권위주의적 이념과 나치 정권의 정당성에 공유했다. 1933년에 새로운 법률로 소수 집단을 포함한 시민의 정치적 자유, 권리 및 보호를 보장한 바이마르 공화국의 민주적 헌법이 줄여지자, 판사들은 합헌성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대부분 판사는 나치가 통치하는 동안 법을 지지했을 뿐만 아니라 반유대주의 및 인종 정책을 시행하는 정권을 막기보다는 지지하기 위해 광범위하고 광의적으로 법을 해석했다. 근로자-고용주 간의 법적 계약 해지 법률 사건에는 판사가 유대인에게 이익이 될 판결을 내리지 않았다. 예를 들어, 한 계약 위반 사건에서 판사는 유대인이라는 정체를 "장애"로 정의해 직장에서 해고할 근거로 해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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